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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by 김근상

“여보세요! 지금 가면 머리 깎을 수 있나요?”

“지금은 안되고요, 11시에 오실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11시까지 가겠습니다.”


미용실 아주머니와의 대화다.

나의 머리 깎는 주기는 달포마다 이루어진다. 이발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발소보다 미용실을 이용한다. 미용실을 한 번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머리 깎으러 갈 때마다 앞머리는 어떻게 깎고 옆머리는 어떻게 해달라 윗머리는 또 어떻게 잘라달라 말하곤 했다. 미용실 갈 때마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피곤하고 또 그렇게 깎지 않으면 속상하다. 그런데 단골이 되어 일정한 주기로 가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머리칼을 착착 잘라준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1년 반이 되는데도 예전 다니던 그 00 미용실을 그대로 이용한다. 왜 편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께 들은 이야기다.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려면 목욕하고, 일주일을 즐겁게 보내려 하면 이발을 하고, 한 달이 좋게 보내려면 이사를 하고, 1년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차를 사고, 평생을 편안하게 살려면 종교를 가져라.’

그 말이 나에게 딱 맞다. 이발하고 나면 젊어진 것 같기도 하고 단정하게도 보여 일주일 정도는 즐겁고 행복하게 지낸다.


‘네이버 지도’에 내가 사는 주변 ‘이발소’라 치고 검색해 보았다. 간판이 전통적인 00 이발소가 없다.

우드맨즈헤어, 남드레스덴 바버샵, 브리카오 바버샵, 락우드 바버샵, 빛남멘즈헤어, 크레이브 바버샵 데이파크 등 온통 영어로 된 간판의 이발소다.

00 이발소라고 하면 안 되나? 좋은 우리말 나 두고 꼭 영어를 써야 장사가 잘될까? 내가 너무 고루한 걸까? 세종대왕께서 집현전 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몇 년에 걸쳐 피와 땀으로 창제한 우리말이 천대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 당시 양반을 제외한 대부분 평민은 말은 하지만 그것을 기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백성들에게 배우기 쉽고 쓰기도 편한 과학적인 글자인 한글을 창제하셨다. 한글을 무시한 요즘 사람들의 언어 사용, 단어 구사 세태를 보면 뭐라 할지 참 개탄스럽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었다.


머리 깎는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가장 저렴한 1만 원에서 시작해 1만 3천 원, 1만 5천 원, 2만 5천 원, 3만 5천 원 등 다양하다. 하지만 내가 다닌 미용실은 1만 원으로 저렴하다. 그렇다고 대충 깎고 마느냐. 아니다. 30분 동안 정성을 다해 깎고 시원하게 머리 감겨주고 다시 또 다듬어 주고 심지어 눈썹도 가지런하게 정리해 준다. 그러고도 1만 원만 내면 되니 내가 다른 곳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1만 2천을 계좌 이체하고 염색한 다른 분 손질할 때 빠르게 나왔다. 다음에 가면 왜 2천 원을 더 보냈냐고 할 것 같다. 빚을 갚는 기분이다. 운전해 집으로 오는 동안 내가 그동안 달라는 대로만 준 것은 아닐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5천 원을 더 얹어 줄까…

이런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25. 4. 4)


※ 이발소 회전등의 유래

이발소를 상징하는 회전등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1540년 이발사이자 의사였던 프랑스 파리의 메야나킬이었다. 회전등은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빨강, 파랑, 흰색을 섞어서 만들었는데 여기서 파란색은 정맥을, 빨간색은 동맥, 하얀색은 붕대를 뜻한다.
이는 당시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던 데서 비롯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의사도 이발사와 마찬가지로 손을 써서 일하는 하층민의 직업에 불과했고, 칼이라는 도구를 써서 일을 했기 때문에 공통점이 많았다.
그러다가 점점 사회가 발달하고 의학기술이 진보하면서 이발소와 병원은 각기 분리되었고, 1804년 프랑스의 쟝 바버가 이발만을 전문으로 하는 최초의 이발사가 되었다. 이후 회전등은 이발소를 대표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잡학사전<이발소 회전등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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