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 중순, 00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휘닉스파크에서 봉평 메밀꽃축제장으로 향하는 등산로인 고랭길에 들어섰다. 산길 발아래 부드럽게 밟히는 흙의 감촉이 온몸으로 전해져 도시의 묵은 피로가 씻겨나가는 듯했다. 길섶에는 벌써 붉은 기운이 스며든 단풍잎들이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완연한 가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때로는 삶의 무게를 털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유쾌한 농담으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함께하면 즐겁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서로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힘든 오르막길에서는 서로를 격려하며 의지가 되어주었다.
고랭길은 그렇게 우리에게 단순한 등산로 이상의 의미를 선사했다. 흙길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발걸음마다 행복이 쌓여가는 듯한 기분 좋은 여정이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나는 세 번째로 이효석 문학관을 찾았다. 이곳은 올 때마다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처음엔 그저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었고, 두 번째는 소설 속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작가 이효석의 삶 자체에 더 깊이 다가가고 싶었다.
문학관 곳곳에 스며든 그의 흔적을 따라 걷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그의 삶을 존경하게 되었다. 펜 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던 작가로서의 열정과, 그가 평생 지켜온 문학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느껴졌다. 특히 시인 유진호와의 깊은 우정은 감동적이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두 예술가의 진솔한 교류는 팍팍한 삶 속에서도 서로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었으리라.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면은 이효석 작가의 어린 시절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소설 속 허생원, 성 서방네 처녀, 동이의 이야기는 단순한 허구가 아닌, 작가가 직접 보고 느꼈던 삶의 단편들을 엮어낸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자연과 인간의 정서가 하나로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생명력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문학관의 마지막 코너에 다다랐을 때, 나는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불과 35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간 이효석 작가의 사진 앞에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삶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아쉬움과 함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문학을 남겨준 그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평생을 국어 교사로 살아오며 ‘메밀꽃 필 무렵’을 수없이 가르쳤기에, 봉평은 내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산악회 회원들은 흥겨운 메밀꽃 축제를 즐겼지만, 나는 오롯이 이효석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느끼고 싶어 문학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문학관을 나와서 이효석 생가를 찾아 나섰다.
네이버 지도 길찾기를 켜고,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며 걸었다. 하지만 길은 좁고 복잡했으며, 이정표는 오히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몇 번을 헤맨 끝에 결국 생가를 찾지 못하고 허탕을 치고 말았다. 허탈한 마음에 ‘왜 이정표를 제대로 해놓지 않았을까’라는 분통이 터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가는 문학관이 아닌 ‘효석달빛언덕’이라는 곳에 있었다. 내가 헛걸음했던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은 아쉬움과 실망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다음에는 꼭 제대로 된 길을 찾아 생가를 방문하리라 다짐하며, 봉평에서의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25.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