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96년의 세월

by 김근상

가을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날, 아내와 나는 용인에서 광주 처갓집을 향해 길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세 시간 반이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출퇴근 시간 정체와 곳곳의 도로 보수 공사로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지루함 대신, 우리는 장모님을 만날 기대와 설렘으로 마음이 가득 찼다. 차창 밖으로는 황금빛으로 물든 호남평야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풍요로운 풍경은 마치 장모님의 따뜻한 마음을 닮은 듯했다. 아내와 번갈아 운전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아내는 안전을 이유로 운전 중 스마트폰을 못 보게 하지만, 그 덕에 오롯이 운전에 집중하며 묵묵히 길을 갈 수 있었다. 아내의 배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한정식집 '금0연'에서 우리는 가족들을 만났다. 장모님을 모시며 살고 있는 큰 처형 부부, 같은 광주에서 늘 장모님을 찾아 뵙고 있는 둘째 처형 부부, 그리고 장성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처제 부부까지. 모두 장모님을 걱정하는 한마음이었다. 96세의 세월을 견디신 장모님은 예전과 많이 달라지셨다. 늘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성경책은 더 이상 읽지 못하시고, 귀가 어두워져 말씀도 잘 알아듣지 못하신다. 힘이 없어 앉으려 만 하시고,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모두의 마음이 무거웠다.

장모님은 올해 치매 초기 증상까지 겹쳐, 어눌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지난날의 정정하셨던 모습들을 떠올렸다. 큰 처형 부부는 매년 장모님의 상태가 다르다며 걱정이 많았다.

식사 시간, 장모님은 식사를 조금만 드셨다. 예전 같으면 손수 차려주신 푸짐한 밥상으로 우리를 맞아주셨을 텐데, 이제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겨우 드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작년 장모님 생신 때 멀리서나마 내 용돈으로 사서 보낸 꽃바구니를 앞에 놓고 환하게 웃으시던 사진을 큰 처형이 카톡으로 보내주었을 때의 그 미소가 떠올라 가슴 한편이 시큰거렸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전화로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으실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전화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시는 현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식사를 끝내고 장모님을 부축했다. 지팡이 짚고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하셨다. 안 되겠다 싶어 차라리 업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업어 드렸다. 15년여 전 중국 여행 때 만리장성에서 업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깃털처럼 가벼웠는데 내가 힘이 빠진 모양이다. 지금은 무겁게 느껴졌다. 내리면서 나와 장모님이 함께 뒤로 넘어졌다. 뒤에 따르던 아내와 처형이 부축해서 크게 엉덩방아는 찧지는 않았다. 다행히 장모님은 아무 이상이 없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함부로 어르신을 업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떠나기 전, 장모님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그 손은 이제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우리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한 번이라도 더 뵙고 싶은 마음에 이 먼 길을 달려왔다. 장모님을 찾아뵙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사랑과 아쉬움, 그리고 간절함으로 채워진다. 힘겹게 살아온 96년의 세월,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남은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더 뵙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그 깊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장모님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96년의 세월이 담긴 그분의 주름진 얼굴에서, 나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읽는다. 한때는 누구보다 강하셨을 어머니의 모습이 이제는 한없이 약해지셨지만, 그분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그분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긴다.

(25.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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