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면 시계는 정확히 여섯 시간을 가리킨다. 11시 정도에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다섯 시 정도에 눈이 떠진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7~8시간을 자야 생체 리듬에 좋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여섯 시간이 굳어진 습관이다. 일단 잠자리에 들면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듯 잠에 쉽게 드는 편이다. 그런 나를 아내는 늘 부러워한다. 아내는 잠자리에 누워 한 시간가량을 이 생각 저 생각하다 겨우 잠이 든다. 잠 때문에 항상 힘들어하는 아내를 볼 때면, 내가 가진 이 ‘쉬운 잠’이 때로는 미안할 정도다.
우리의 수면 리듬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는 종달새형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몸에 익었다. 학창 시절이 그랬다. 초등학교 5~6학년,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나는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어머니께서는 늘 ‘감기 걸린다, 자라’고 말씀하셨지만, 고요한 새벽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집중력은 오늘날의 어떤 독서실 보다 좋았다. 지금 이 수필을 쓰는 것도 동이 트기 전, 가장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있다.
반면, 아내는 전형적인 올빼미형이다. 늦게까지 깨어 있어야 컨디션이 좋고, 오전에는 늦게까지 잠을 청한다. 나의 새벽 활동과 아내의 늦잠 습관은 하루의 시작점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따로 자기 시작했다. 잠이 드는 시간과 깨어나는 시간이 이렇게 다르니, 각자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걱정거리가 있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쉽게 잠들지 못할 때가 있다. 더 괴로운 것은 잠들었다가 두어 시간 만에 깨는 날이다. 이때 한두 시간을 꼬박 핸드폰과 책을 보며 보내다 다시 잠들곤 했는데, 요즘은 이 습관을 고치기 위해 핸드폰을 아예 침대에서 멀리 두고 잔다. 그래야 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곁에 두고 자면 새벽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깼을 때 꼭 핸드폰에 손이 가고 만다. 무심코 뉴스를 들여다보면 정신이 맑아져 이것저것 검색하다 한두 시간은 순삭이다. 그러고 다시 자려면 잠이 달아나 버릴 때가 많다. 잠을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유혹이 바로 손안의 작은 화면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잠은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잠을 많이 못 잔 날의 나는 완전히 무너진다. 육체적인 증상은 즉각적이다.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눈은 실핏줄로 충혈된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신적인 피로다. 집중력이 곤두박질치고 심리가 불안해진다. 책을 읽어도 책장은 넘어가는데, 내가 뭘 읽었지? 머릿속은 딴생각만 하다가 다시 그 페이지를 읽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잠 자는 동안 뇌는 낮 동안 쌓인 기억을 정리하고 노폐물을 처리한다는데, 이 중요한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너무나 처참하다.
수면이 부족하면 우리의 감정선은 쉽게 날카로워진다. 잠은 단순히 몸의 피로를 푸는 시간을 넘어,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고 정신적인 평형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다. 잠에 들지 못해 고통받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잠을 설친 날의 내 모습을 보며, 나는 수면의 질이 곧 삶의 질이라는 진리를 매일 확인한다. 잠에 드는 순간부터 깨어나는 순간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회복하고 재정비된다.
나의 여섯 시간 잠이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지만, 나는 적어도 쉽게 잠들 수 있다는 나의 종달새형 리듬에 감사하며, 잠을 삶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기둥으로 여긴다. 밤의 고요함 속에서 뇌와 몸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잠자리에 들기 전 모든 걱정과 유혹을 내려놓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잠이야말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충전하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라 생각한다.
(2025.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