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

by 져닝

나는 첫째다.

부모님이 결혼하시고 7년만에 얻은 아기였다.

이후 아홉살, 열두살 차이나는 동생들이 생길때까지 외동이었다.


아버지께서 형의 보증을 섰기에,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냥 평범한 편이었다.

갖고싶은 것을 모두 가질수는 없지만 크게 불편한 건 없는?


고등학교까지는 사실 비슷비슷한 친구들을 보며 자랐고

대학교를 가서 본 서울에서는 항상 하고싶은 것, 갖고싶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무척 새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와 흥미로웠다.

내 세상은 그렇게 확장되어 갔고, 좋은 것을 누릴때면 가끔 부채의식이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이런 거 모를텐데...'

좋은 곳에 가면 엄마 얼굴이 떠오르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엄마 생각이 났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항상 아끼면서 사셨다.

유일하게 아끼지 않았던 것은 나에게 쓰는 돈이었다. 학원비며, 과외, 독서실 등...

물론 가족끼리 가끔 외식도 하고 계절에 따라 여행도 잘 다녔다.


하지만 내가 알바비를 모아 여행을 다니고, 직장인이 되어 내 월급에는 조금 부담되는 곳을 다녀볼 때마다

내게는 선택권이 있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기회가 없었을 것 같아 항상 마음이 아렸다.


그래서 취업을 하고 나서는 엄마께 무언가를 해드릴 때마다 기뻤다.

예쁜 옷이나 신발을 사드리고, 좋은 곳에 함께 가고, 맛있는 걸 먹고...

동생들에게도 학창시절 내가 느꼈던 결핍이 없길 바라며 가끔씩 선물을 했다.

그 시간들은 사실 내게 더 선물같았다. 어느 정도 보상받는 기분이었달까.


하지만 몇년이 지나자 하나의 관습처럼 굳어져 부담스러워졌다.

첫 의도는 순수했지만, 돈을 모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자

이것을 내가 평생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서울살이를 접고 내려와서는

집에 있지만 너무 오래되어 작동하지 않는 에어컨을 바꿨고, 식기세척기를 샀다.

내가 최소 1,2년은 지낼 집이라 생각하여, 창고 정리도 하며 물품을 꽤 사면서,

의도치 않게 꽤나 많은 돈을 썼다.

그게 내 생각보다 심리적으로 무척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온전히 기쁘지만은 않았으며, 내 어깨에 무거운 짐이 있는 것 같았다.


올해 엄마 생신에 가족끼리 식사를 하러 가서 당연히 내가 결제하는 것을 기다릴 때 너무 서운했다.

나는 선물도 사드렸고 케익도 사드렸는데, 왜 식사까지 내가 당연히 사는 것처럼 되는건지...

그래서 엄마 생일에, 가장 기쁜 날에, 엄마를 찔렀다.

내년부터는 이렇게는 못한다고...

나는 딸이지 남편이 아니고, 200 남짓 버는 직장인에게 너무 큰 돈이라며 짜증을 냈다.

엄마가 눈치 볼 걸 알면서도 말이다. 다른 날에 말했으면 좋았을걸...


뭔가 모순적인 관계다.

요즘 아이유와 박보검이 나오는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의 대사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본 듯했다.

'엄마를 찌르면 내 가슴에도 똑같은 가시가 박혔다'


오늘은 쿠팡을 보다가 집에 있는 오래된 김치냉장고가 생각 났다.

엄마에게 무턱대고 전화해 56만원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있다고 했고, 나는 "그럼 우리 56만원씩 해서 김치냉장고 바꿀까?"라고 했다.

엄마는 무척 좋아했다.


사실 전화걸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쓸 수는 있는 돈이지만 내게도 결코 작지 않은 돈이라 주저하게 되었는데

이 기억이 엄마가 없는 그 순간까지 내게 무척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기뻐하자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무척 기뻤다.

올해 내가 한 소비 중 가장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K장녀가 맞는 것 같다.

부모님의 젊음 위에서 자랐기에, 그들의 희생을 알고있어서...

약간은 그 시간을 보상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하다.

그것은 내 역할이 아니라고 상담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분리하기가 꽤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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