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피낭

새삼스러운 건강의 소중함

by 져닝

작년 8월 쯤부터였나

발바닥의 사마귀 치료를 하고서 걷는게 조심스러워 엄지쪽에 힘을 줘 걸었다.

그랬더니 찌릿하고 자극을 받는 부위가 있었는데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서 며칠이 지났더니 몽글몽글 뭔가가 생겼다.


말랑말랑해서 애써 무시했는데 어느 순간 조금씩 딱딱해지는 거 같아

무서워 정형외과에 갔다.

결절종일 수도 있고, 뼈에서 흘러나오는 점액같은 걸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굳이 제거를 하지 않아도 된다셨다.

견딜만한 불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더니 점점 딱딱해져서 가끔씩 바닥에 닿을 때 아팠다.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병원에 갔더니, 결절종이라면 주사로 빼보자고 해서

주사기를 넣었는데 빠지지 않았고 mri를 한 후에 수술을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수술말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마지막으로 병원 한군데를 더 가봤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전대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게 좋겠다셔서 결국 대학병원까지 가게 됐다.


전대병원은 당일 예약은 되지 않았지만 취소된 날이 있어 운좋게 그 다음주에 진료를 봤다.

교수님 한 분께서 진료를 보고 계셔서 예약 잡기도 너무 힘들었는데,

예약일에 가서도 한시간씩은 대기해야했다.


반차까지 내고 와서 예약을 했음에도 대기시간이 길자 짜증이 났는데

진료를 받으러 교수님을 뵙자마자, 얼마나 지치셨는지가 보여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수술을 하자셨고, 초음파를 찍으려면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외부에서 찍어 가기로 하고 3월 18일에 수술 날짜를 받았다.


약 두달간의 시간동안 표피낭은 점점 더 딱딱해지고 약간씩 커져서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러면서 그때 수술을 하기로 마음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끔찍해졌다.


수술을 하러 병가를 내고, 부모님과 병원을 갔는데

그날은 전보다 더 병원에 사람이 많았고 교수님은 여전히 지쳐보이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갔음에도 무척이나 무서웠다.


부분마취를 하면서 3번을 찌르는데 꽤나 깊이까지 찔러 베개에 얼굴을 묻고서

윽...윽... 악.... 외마디 비명을 낮게 읊조렸다.

교수님께서는 '아... 내가 대신 아프고싶다. 나는 매번 환자들을 서럽게만 해...'

하면서 긴장을 내려놓게끔 도와주셨다.

마취를 했기때문에 수술 자체는 아프진 않았지만 진행되는 느낌은 알 수 있었다.

특히 꿰맬때... 실이 왔다갔다 하는 느낌이 정말로 썩... 좋지 못했다.


수술을 하는 동안 깨어있는 내가 혹시나 긴장될까 싶었는지

일상적인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 끝나고도 재치있게 말씀을 건네셨다.

멋있는 어른이셨다.

본인 일에 책임감과 환자에 대한 애정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부모님과 담양에 가서 브런치를 먹었는데

애매한 시간이라 가게에 우리밖에 없었고 눈오는 풍경이 너무 예뻤다.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마취가 풀리고서는 무척이나 아팠다.

표피낭이 생긴 자체는 무척 유감이지만

그래도 꽤나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예약 잡기도 힘든데 취소된 자리에 운좋게 들어갈 수 있었고

수술도 교수님께서 해주신데다 츤데레같이 다정하셔서 마음이 힘들지 않았다.

또 회사에서도 양해를 해주셔서 3일간 병가를 낼 수 있었다.

정말로 삶이라는건 새옹지마인가보다.


더이상의 수술은 안하고싶다.

새삼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해가 바뀔때마다 피부에 와닿는다.

주위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잘게잘게 아픈 거 같다.

50여년은 더 이 몸으로 살아갈 텐데 별일 없이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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