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통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저마다 지나온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감수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듯이 내가 선택한 고통을 잊기 위한 방법은 회피였다.
그 일들이 일어난 적조차 없었던 냥 기억 속 저편에 묻어두고 그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어느 날 하나뿐인 언니와 아버지 얘기를 나누다 같은 가정에서 자란 우리도 고통을 다루는 방법이 다른 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가 장난 삼아 호통을 치는 모습에도 과거 매일 밤 술주정을 부리시던 그 모습이 떠올라 여전히 공포감을 느낀다는 언니와는 달리 나는 아버지를 볼 때 자유로운 여행자에 시인처럼 깊은 글을 쓰고 멋진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자랑거리들만을 떠올리려 한다.
언니처럼 그때의 공포를 트라우마처럼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중학생 시절 10층 베란다 문을 열고 떨어지려 하시던 아버지를 붙잡았던 일은 일어난 적도 없던 것이라 여기며 기억 속에 숨겨두는 것이 내겐 훨씬 편했다.
내 인생의 전부였던 첫 연애에서는 더 이상 사랑을 믿을 수 없게 됐을 정도의 큰 상처와 배신감을 받는 일이 있었다.
연인과 함께 지내던 집을 잠시 비운 주말 사이 그와 나의 절친이 바람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그 사람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사람으로 존재하며 내게 고통을 남긴 일들은 기억 속에 묻어두고 꺼내려하지 않았다.
내가 겪었던 고통들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나에겐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을 왜곡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들로 포장하며 그것들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살았다.
나에겐 보내지 못한 과거의 아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신마저 속이며 살던 나였지만 어딘가 항상 불안하고, 불안정해 또다시 상처 입고 고통 받음에도 도통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회피해오던 과거의 아픔을 다시 꺼내어 지금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마음 챙김 명상을 하게 된 덕분이다.
가만히 앉아 내 안에서 어떠한 생각들이 피어오르는지, 어떠한 감정이 일어나는지, 어떠한 감각이 느껴지는지 세세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하루, 이틀, 1주, 1달…
몇 날 며칠을 내 안에 나와 사투를 벌이고서야 가슴 한편 숨겨두었던 고통의 상자를 열 수 있었다.
명상으로 나 자신을 다스리려 자리한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리듯 터져 나온 고통들은 더욱 나를 괴롭게 하였다.
포기하고 또다시 이 고통들을 마음속 상자 안으로 집어넣어 숨겨야 하나란 약한 마음이 생겼지만 다시 한번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이번엔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함께하였다.
그것들이 내 안을 가득 채우도록 그저 내버려 두었다.
감정의 흐름대로 맘껏 울기도, 화를 내기도,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한참을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있다 보니 그제야 그것이 서서히 사라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파란 하늘에 갑자기 몰려든 먹구름들이 비를 쏟아붓고 천둥을 내리치고는 서서히 사라지며 다시 파란 하늘이 개어 보이듯이 말이다.
용기를 내어 고통을 마주하고 보니 결국 그것들도 그저 내게 왔다가 지나가는 것들이며 더 이상은 나를 괴롭힐 수 없는,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일이었다고 깨닫고 나니 비로소 상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괴로움과 아픔들이 내게 오기 전부터 존재하던 실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못 본 척 숨겨둔 탓에 하루빨리 치유되지 못하고 더 부르트고 곪아 버려 조금 더 많은 노력과 치료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이제서라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새로운 건강한 방법을 알게 되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나는 잠들기 전 앉은 다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언젠가 이것들에 영향받지 않으며 경험의 스승으로 삼고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