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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라이프 Oct 07. 2022

윤리를 핑계 삼지 마라.

(윤리)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니체 - 


윤리를 지향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윤리를 추앙하며 타인을 재단하거나 비판하는 것에 중독되는 사람이 있다.


윤리는 무조건 옳은 것일까? 윤리는 사람들이 모여 살며 경험적으로, 주관적으로 합의한 도덕관념이다. 보편적이지만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다. 이런 성질로 인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윤리의 기준도 바뀐다. 윤리적 딜레마를 겪으며 혼동하고 새로운 기준과 질서가 생겨난다. 절대적인 정의가 있다면 윤리적 딜레마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윤리의 상대성으로 인해 윤리에는 정도가 있다. 절대적으로 통용되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고 사람마다 윤리적인 정도가 다르다. 개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얼마나 이기적 일지, 얼마나 이타적 일지 선택할 수 있다. 보편적인 윤리를 지향하면서도 개별적인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


보편적 윤리, 개별적 자유의지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나치게 윤리적인 것을 지향하며 발생하는 문제를 조심해야 한다. 윤리 중독자는 윤리를 핑곗거리로 삼는다. 윤리를 너무 떠받든 나머지 분노하고 공격하는 괴물이 된다. 도리어 자신이 윤리적이지 않게 행동한다. 자존감을 높이려거나, 남을 공격하기 위해 윤리를 수단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윤리를 수단으로 이용하는지 자각하기 어렵다. 거창한 신념에 종속돼서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이고 마땅하다고 취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도와 결과를 구분 지어봐야 한다. 의도는 내 마음일 뿐이고 결과는 실제로 영향력이 퍼지는 행태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현실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만드는 데 윤리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윤리를 지향하다 오히려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윤리로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은 윤리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자기 자신을 드높인다. 윤리적이고 싶은 이유가 이타심이 아닌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윤리 중독자는 판단하고 지적하는 버릇이 있다. 외부 상황과 타인을 판단하는 것에 집착한다.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보다 남을 판단하는 시간이 더 많다. 자기의 인생,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삶을 창조하기보다 남의 인생, 남의 문제를 판단하고 남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러 문제들로 분노하지만 깊은 내면은 오히려 문젯거리를 찾아내 신나 하고 있을지 모른다. 문젯거리를 지적하면서 자존감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내면보다 외부의 것으로 시선을 돌린다. 정치, 뉴스, 범죄, 실수 등 비판 거리를 쫄쫄 쫒아다니며 공격하고 분출한다.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 조종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자기 의견에 맞게 설득하고 가스라이팅한다. 다양한 타인들의 자유의지를 한 가지 정답, 한 가지 사상, 한 가지 윤리로 합치시키려고 한다.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구분하지 않고 타인에게 깊게 관여하며 자기 생각으로 통일시키려고 한다.


절대적 윤리도 없고 절대적 인간도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인성적으로 완벽하고 모든 현상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갖고 있는 인간은 없다. 심지어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도 그럴 순 없다. 그래서 실수한다. 그런데 윤리 중독자는 실수를 지나치게 공격하고 혐오한다. 완벽한 인간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진리다. 불완전하다는 것이 인간의 성질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모인 게 사회다. 그래서 착한 사람도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나쁜 사람도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분노감에 휩싸여 남 탓, 사회 탓, 나라 탓, 세상 탓하며 독선적으로 원망하고 “사람들이 왜 이럴까?”, “세상이 왜 이럴까?” 비판하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그게 사람의 성질이고, 세상의 성질이다. 세상은 천국이나 유토피아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불완전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데 자신은 완전하고 인위적인 관념 속 이상 꿈꾸며 고통받는 것이 아닌가? 


세상의 결함을 끌어안고 더 나아지는 과정을 실현하는 게 최선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완벽한 결과물은 닿지 않는 이상이다. 누가 이 세상을 절대적으로 정의해줬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팽창하는 시공간의 일부에서 살아갈 뿐이다. 우리는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산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을 완전히 제거하려 하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모순이다. 오히려 필연적으로 결함은 존재한다. 사람이든, 사회든, 세상이든.


윤리를 수단으로 어떤 다른 목적을 실현하고 싶은 건 아닌지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윤리’를 방패 삼아 자기를 보호하려거나, 남을 공격하면서 분풀이하거나, 오히려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자각해야 한다. 


모두가 나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모두가 나같지 않아야 한다. 나와 타인은 다르다. 나의 기준을 모두의 기준으로 만드려 하지 않아야 한다. 개입하고, 훈수두고, 지적하고, 판단하기보다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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