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
나는 빈말을 잘 못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이런 성격을 진정성 있고 진실한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단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말 다하고 사는 성격’이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당당함, 자신감은 오히려 소인배의 포장 일지 모른다.
할 말 다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게 더 어렵다. 못 참고 내뱉는 건 쉽지만 참고 내뱉지 않는 것은 어렵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억지로 하는 건 더 어렵다.
언어의 왜곡을 담담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사소함에 사로잡힌다. 마음과 다른 말을 할 때 자기표현이 저해되고 자존감이 위협받는 것을 참지 못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과 다른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은 그런 자존감의 위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이 단단하기 때문에 마음과 다른 말을 해도 자기 자존감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사소하지 않고 대인배다.
예능 프로를 보면 사회성의 끝판왕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기막힌 언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재미가 없어도 싸인 한 번에 언제든지 박장대소와 리액션으로 화답할 수 있다. 기분 나쁠 수 있는 놀림도 잘 받아치고, 싸한 분위기도 금세 좋게 바꾼다. 그들은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는다. 마음에 없는 말도 잘한다. 능구렁이다.
하지만 나같이 내향적이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말 한마디에 신중하고 곱씹는다. 그냥 쿨하게 내뱉지 못한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 의미 없는 말을 하기가 힘들다. 진중하고 진솔하게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에 진심을 담는다.
그래서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솔직한 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솔직한 것은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을 뿐이다. 솔직함은 그냥 솔직함이다. 중립적이다. 솔직함을 과대평가해서 우직하게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내향형은 자기를 신경 쓴다. 에너지가 자기로 향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들을지보다, 내가 어떻게 말할지에 집중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다. 자기를 더 신경 쓰고,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 쓰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것이다. 소통을 잘하고 싶다면 남이 어떻게 들을지를 더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지나치게 솔직하면 무례할 수 있다. 오히려 빈말을 적절하게 하는 것은 그 순간 자기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감정을 우선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솔직함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면 곧이곧대로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언어습관과 자신이 당당한 사람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더해지면 무례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소통의 핵심은 원활한 정보 전달이다.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정보 전달을 원활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 중 하나로 내가 전달하는 부분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부분은 간과하는 것이다.
업무로 예를 들어보자. 내가 업무협조 메일을 잘 완성해서 보냈다고 소통을 잘하는 게 아니다. 해당 부서에 한번 더 전화를 걸어서 최종적으로 나의 메시지를 잘 확인하고 이해했는지 묻는 게 소통을 잘하는 것이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내가 완벽한 체계와 구성으로 말을 잘한다고 잘 가르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잘 이해하는지 물어가며 상대방의 이해도를 확인하는 게 소통을 잘하는 것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오은영 박사님의 말을 듣고 정말 뜨끔했다. 논리적인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실수 중 대표적인 게 논리적으로 완벽한 말로 아이들을 훈육하는데 비논리적인 아이들의 감성, 마음은 어루만져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부모는 자기의 논리가 완벽해서 잘 타이르고 훈육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논리적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게 소통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언어의 출발이 소통이 끝이 아니고 언어의 도착이 소통의 끝이다.
의사소통을 왜 잘하려고 하는가? 서로 잘 이해하고 오해를 줄여 잘 관계 맺기 위해서다. 정보 전달은 최종적으로 정보가 도착할 때 완성된다. 내가 어떻게 말할지보다 상대방이 어떻게 들을지 생각한다면 더 좋은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