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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라이프 Oct 31. 2022

너무 착하면 오히려 나쁠 수 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이해타산, 이타심, 이기심)

어디까지 착해야 하는 건가? 착한 마음은 아름답다. 그런데 착한 것에도 정도가 필요할 수 있다. 너무 착하면 오히려 나쁠 수 있다.



1. 이기심과 이타심 모두 적절해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개인의 특질에 따라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이타적인지 다르기도 하지만 이기심과 이타심을 인간이라면 모두 갖는다.


이기적인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 유전자를 갖고 있다. 생존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자기 보호는 자연스럽다. 다만 너무 이기적이면 나쁠 수 있다. 남에게 해를 가하면서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은 인간과 함께 할 때 행복하다. 함께 하며 시너지를 내고 유대감을 느낀다. 다만 너무 이타적이면 나쁠 수 있다. 자신이 해를 입더라도 남만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이타적인 사람의 새로운 문제는 자신이 해를 입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 혹은 또 다른 타인에게까지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2. 이해타산 : 어떤 것이 이로운 지 알고, 어떤 것이 해로운지 안다.


해에 둔감해지면 해의 영향력을 타산하지 못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Nice Guy Syndrome)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도 하며 남을 위해 주는 자신의 착한 모습에 강박관념이 생기는 증상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은 이타심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희생을 아무렇지 않은 것쯤으로 생각한다. 희생한다는 것은 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를 해하든, 내가 남을 해하든, 남이 나를 해하든, 남이 남을 해하든 해는 해다.


가장 좋은 것은 해가 안 생기고 서로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게 좋다. 그런데 해가 생기는 것에 대해 무디면 서로 좋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냥 자신을 쉽게 희생해 버린다. 또한 해에 둔감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는 주변 사람의 희생도 마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하를 위하는 것보다 자신의 몸을 더 귀하게 여긴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 자기 몸으로 천하를 위하는 것만 좋아한다면 어찌 천하를 맡길 수 있으랴?" 동양 철학자인 양주(楊朱)의 말이다. 


자기 물건 아끼는 자가 남의 물건도 아낄 줄 안다. 자기 생명이 귀한 줄 아는 사람이 남의 생명도 귀한 줄 안다. 남을 위해 쉽게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자가 권위를 갖게 된다면, 아랫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동일한 기준과 규칙을 적용하며 그들을 희생에 동참시킬 수 있다.


그러니 양주는 자기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남도 귀하게 여길 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를 존중하지 못 하는 사람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을까? 자신을 이롭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이 타인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남을 위하는 것은 자신이 만족하는 기준보다 남을 만족시키는 기준을 우선하여 따지는 것이다. 자기보다 남을 우선한다. 또는 자기 그룹보다 남을 우선한다.


자기의 기준이 아닌 남의 기준대로 판단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수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으면 오판이 생긴다. 그리고 그 오판에서 해가 생긴다. 사리분별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손해든, 피해든 내가 해를 입는 것을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자기희생을 숭고한 사랑으로 포장하는 인식 오류가 생긴다. 인식의 오류를 통해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돈도 없는데 기부하거나 돈 빌려주며 자금난에 허덕인다.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서 일을 크게 만들고 주변 사람까지 일에 끌어들인다.

퍼주고 져주기만 하다 버림 받는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 나는 그 정도 해를 입는 게 별게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가까운 지인이 입는 피해에 공감을 못 한다. 그리고 착한 행동을 위해 같이 손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이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너무 착하면 오히려 나쁠 수 있다.



3. '착함' 그 자체는 좋다. '착함 콤플렉스'가 문제다.


'착함'이라는 속성으로 파생될 수 있는 콤플렉스, 즉 이해타산을 잘 못하는 것, 착한 이미지에 강박증이 생기는 것, 이타심의 정도를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에게도 적용하는 것 등이 문제다.

 

착하게 구느라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 나쁜 것이지 착한 것은 좋다. 선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 좋지 누가 악한 에너지를 좋아할까. 그리고 가끔은 손해를 보며 배려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득바득 자기 권리만 챙기며 살 순 없지 않은가? 


뭐든지 정도가 중요한 것 같다. 그 정도라는 것이 주관적이어서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해타산을 현명하게 할 지혜는 필요하다.


너무 착하면 오히려 나쁠 수 있다. 희생에 둔감하면 타인에게도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무지로 인해 간접적으로 남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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