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실존, 실존주의)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왜 사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자기 존재와 자기 삶을 인식하는 가장 궁극적인 질문일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
실존은 구체적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본질은 어떤 것이 존재하는 이유나 목적이다.
‘의자’라는 실존의 본질은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신발’이라는 실존의 본질은 ‘발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럼 ‘인간’이라는 실존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종교적 신념을 배제하면 인간은 그냥 인간이다. 인간의 본질은 없다. 인간은 그냥 존재한다. 심지어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나 진 것이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이 성질을 ‘피투성’이라고 한다.
생명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지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먼저 태어나고, 그다음에 자신의 존재와 삶을 인식한다.
인간이 해야만 하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 인간은 그냥 실존하는 존재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어떤 목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주어진 대표적 특성은 자유다. 목적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해야만 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 여러 강박에 사로잡혀 있고, 오히려 주체적인 자유 의지는 잃어버린다. 바로 사회성에 종속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사회와 더불어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성은 보편적 기준으로 개인의 자발성을 가두고 종속시키기도 한다.
결혼을 해야 하는지,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지, 화이트칼라로 일을 해야 하는지, 남친룩을 입어야 하는지, 면도를 해야 하는지, 결혼식장에 지인이 많이 와야 되는지 등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많은 강박을 정답으로 여기고 강박에 종속되어 살아간다.
그렇게 보편적 기준에 종속되는 이유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본질은 없기 때문에 정해진 정답이나 의무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불안하다. 정답이 없는 선택을 해야 하니 불안하다. 불안한 선택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의 이념이나 기준을 정답으로 여기고 정답에 의존해 수동적으로 살고자 한다. 고민할 필요도 없고 책임질 필요도 없다. 보편적인 가치를 그저 잘 따르면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자유의지를 내려놓고 사회의 기준을 따르니 자기기만을 하게 된다. 자기기만의 대가는 냉혹하다. 내 마음의 기준과 사회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공허하고 정체성을 의심하며 마음이 불편하다.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 자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가 있음에도 자유가 없이 산다. 마치 사회로부터 자유를 뺏긴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자유는 사실 나에게 있다.
사회의 기준,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종속시키며 자신의 진실성을 왜곡시킨다. 그런데 정말 사회에는 정답이 있는 것일까?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수많은 인간들의 주관적 합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지만 그것은 주관적 관념의 양이 많을 뿐이다. 보편적일 뿐이지 절대적이지 않다.
삶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고 이미 정해진 틀에 자기의 삶을 맞추면 공허함을 느낀다.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기 어렵다. 자기 삶을 피지배 속에 가두게 된다.
외부의 껍데기를 본질로 굳게 믿어버린다. 하지만 본질은 없다. 본질은 무의미라는 것이다. 그럼 왜 사는 것인가? 인간의 목적이 없고, 삶의 목적이 없으면 도대체 왜 사는 것인가?
목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목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도 필요 없다. 자유로운 존재로서 내게 가치 있는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실현하며 살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여러 관념적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말 진실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자유의지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
“실존하는 삶을 살자.”
우리는 여러 관념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렇게만 살아가면 무난한 삶이라고, 이렇게만 하면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보편적인 삶의 모양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그런데 한 번뿐인 소중한 내 삶에 내 자유 의지, 내 정체성을 숨죽인 채 남들에게 보기 좋은 모양새로만 살아는 것이 정답일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사실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결론이라는 것을 알아차려 보자. 단단해 보이는 그 가치가 언제든 허무하게 무너져버릴 수 있는 허상일 수 있다. 가치는 나에게 가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념의 감옥에서 벗어나자.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인 현실이라고 왜곡하지 말자. 아름답고 다채로운 인간성을 특정 이념이나 관념으로 억압하며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자. 실재하는 현실을 살고 더 자유롭고 주체적일 수 있다면, 오히려 그런 나의 존재 방식이 나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만들어 충만한 삶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