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 Life

삶은 유한하다.

(죽음, 유한성)

by 어나더라이프

나는 죽음을 모른다. 죽을만한 상황에 놓여보지도 않았고 죽는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아직은 내겐 먼 얘기 같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으며, 현실은 지옥이라고, 현실은 너무 괴롭다고 한탄한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징징거린다. 과연 죽음 앞에서도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병에 걸려 정말 죽어간다면, 생기 있는 것들에 경외감을 느낄 것 같다. 나는 죽어가고 있으니, 생기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피고 자라는 꽃과 나무들 등의 별것 아닌 일상적인 모습에서도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생명력을 뿜어내며 살아가는 모습이 부러울 것 같기도 하다.


단지 생기 있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부러울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살아 있는 내 삶을 스스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만약 죽어간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재발견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나는 살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죽어 가고 있다. 탄생과 소멸은 한 찰나지만, 내 삶은 그 사이에 과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죽어가고 있다.


서양 철학에는 “Mementomori”,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삶은 한 번뿐이고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삶을 낭비하는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오늘은 가장 하고 싶고, 가장 진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할 것이다.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삶을 인식할 수 있다. 삶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 삶에 감사할 줄 모른다.


물론 막상 죽음이 닥치지 않고서야 정말 그 처지를 깊이 공감하기 힘들 수 있다. 또한 죽을뻔한 적도 없으면서 감히 이상적인 얘기를 늘어놓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헛된 것으로 단정하지는 말자. 때가 되면 후회하던지, 말던지 하는 태도는 죽어 가는 태도다. 단지 시간에 내 삶을 맡기기 때문이다.


그저 살아 있는 삶이 아니라 진정 살아가는 삶이라면 내 인식과 의지가 반영돼야 한다. '유한적인 삶'에 대한 인식과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의지다. 세상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던져졌을지라도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투해야 한다.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지라도 삶은 주인공은 나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 삶을 내가 만들겠다는 책임이다.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살아가며 죽어 간다. 나는 얼마나 생기 있게 살아가는가? 시간에 흐름에 내 주체성을 내려놓고 죽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유한한 삶이라면 생기와 활력을 되찾아 내가 누리는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두려움에 떨기 위함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유한하다. 나는 최초의 인간도 아니고 최후의 인간도 아니다. 나의 시대는 정해져 있다. 수용할 뿐이다.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삶의 소중함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서다.


작은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감사해야 한다. 더 많이 사랑하고 나누며,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누려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한 번뿐이라면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실행해서 내 인생을 창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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