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는 외국인

by 김인영


그이는 외국인


눈을 뜨니 어둠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마음은 단풍처럼 빨갛고 노랑으로 들떠있는데 길 위의 떠남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바다를 보고 산이 산을 업고 있는 강원도로 떠나는 거다.

묵은지처럼 오래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궁금했지만 먼저 연락을 한다기에 기다림으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지방으로 잠시 여행을 떠났다가 발목을 다쳐 거동이 불편하시다고 했다. 아뿔싸 떠나실 날이 멀지 않았을 텐데 어쩌나 하는 염려와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내 딸들의 나이보다 10 년도 어린 나이에 만난 오래된 친구 분들이다. 친구라고 하지만 언니도 한참 언니요 오빠뻘이시다.

두 분은 타지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어린 내게 배려와 사랑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눈꼬리가 내리며 소리 내어 활짝 웃을 땐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내려놓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그분의 신앙심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때는 공부하는 남편을 곁에 두고 살았기에 우리들은 늘 가난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부자였다. 주말엔 노래를 부르며 강을 따라 산책을 했고 다리 밑에서 테니스를 쳤다. 길에 버려진 책상을 집어다 쓰고 누군가 식탁을 발견하면 우리보다 늦게 공항에 도착한 새로운 이웃에게 알려주곤 했다. 그리곤 좁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행복해했다. 우리에겐 젊음과 꿈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자산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물론 때로 어려움도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와 문화에 대한 낯섦과 어린것들의 희생이 따랐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꿈을 좇아 이른 길에 우리는 동과 서로 나뉘어 삶의 터전을 잡았다. 나는 한국에서 그분들은 미국에서 말이다. 따스한 마음은 그대로인데 우리의 겉모습은 참 많이도 변했다. 어느덧 40년을 사셨으니 그곳이 고향인 셈이다. 부모님도 진작 세상을 떠나시고 아들들과 벗이 많이 있는 그곳이 고향이라 할 만했다. 노후를 안전하게 지켜줄 연금도 나오고 여럿이 거쳐 간 집도 그곳에 있으니 고향이 아니겠는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하며 그이는 말했다. 서울에서 늦은 밤 속초로 내려오는데 만났던 버스 기사의 친절에서 많이 행복했단다. 그리고 그는 혼자 생각했단다.‘ 나는 사실 외국인인데 이들은 모르는구나. 내 나라 말로 자유롭게 책을 읽는 것이 이렇게 좋구나. 내가 사는 그곳은 법적으로는 시민인데 외국인으로 살았다. 집 밖에 나가면 튀고 싶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았던가. 많은 날 내국인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하지만 여전히 새장에 갇힌 새였다.'라고. 말씀을 들으며 가슴에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이가 원하는 것을 나는 누리고 있지 아니한가? 그래도 만족하지 못했다. 갑자기 부끄러웠고 그리고 그 자리가 고마웠다. 보고 듣고 먹는 사소한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떠나 본 사람은 안다. 내 좁은 나라가 얼마나 크게 사랑으로 다가오는지를. 짜고 매운 음식이 나를 진정으로 지탱하는 귀한 음식인지를.

언젠가 보았던 그이의 넓은 뒤뜰에 곱게 줄을 쳐 만든 밭에 줄지어 자라던 마늘이 기억난다. 두 분은 은퇴 후에도 어려운 여건의 아프리카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고 계신다. 지금처럼 건강하고 아름답게 사시기를 기도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기를 원한다고 한다. 나는 그들을 잡고 싶다. 그리고 많이 미안하다. 내 탓이다. 우리 어른의 탓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다시 찾아주고 싶다. 함께 단결하여 지키며 가까운 사람들끼리 오손 도손 모여 덕담을 나누고 별자리도 찾아가며 살았으면 좋겠다. 조금 아쉬워도 늘 부족했어도 나누며 살던 우리의 아름다운 정서를 지키며 살자고 말하고 싶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중에 부끄럽지 않은 조국을 물려주려는 마음으로 촛불을 밝히러 나왔다는 젊은 아빠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어느 곳에서도 외국인으로 살지 말자고 소망하는 은행잎이 아름다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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