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길

by 김인영

얼굴 길


길은 땅 위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에도 마음에도 생긴다.
우연히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장소는 부산이었고 여인은 피난민인 듯했다. 한 방울이라도 더 젖을 먹으려고 매달린 아이를 안고 서있는 어머닌 참 고단해 보였다. 그리고 사진 밑엔 ‘나이는 얼굴에 길을 만든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주름 투성이었다. 얼굴에 깊은 계곡을 만들며 표정 없이 서있던 그녀의 모습이 하루 종일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30대 초반인 것 같은데 왜 젊디 젊은 나이에 그리도 주름이 많았을까? 전쟁의 포화가 한반도를 흔들고 간지 반세기가 넘은 세월이 지나갔다. 당시와는 비교가 안되게 모든 것이 풍성한 환경이 되었다.
변한 환경 탓인지 지금은 칠순이 되어도 탱탱한 피부를 갖고 계시는 노인들이 많다. 외모만 보고 그들의 연세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어디 외모뿐이랴? 기억력도 여전히 왕성하여 내 주변엔 시 20 ~30 편을 외우시는 분들은 허다하다. 연극이며 문학창작에도 힘을 쏟으신다. 심지어 난 그분들과 운동도 함께 한다. 나이 차이는 잊어버리고 그냥 허물없는 친구처럼 대화를 나눈다. 서로 通한다. 아마 내 얼굴에도 길이 비슷하게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보았던 사진 속 여인 같은 깊은 주름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얼굴에 깊은 길을 만들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어딘가에 테를 두르며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럼 내 신체 어느 부위에 어떻게 남아있는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더듬어 찾기 시작한다. 출렁이는 뱃살이 만져진다. 굵어진 손 매듭도 보인다. 팔뚝을 가려야만 마음 편해진지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옷 사이즈가 늘어나고 굽 낮은 구두를 신어야 저녁에 편한 잠을 잘 수도 있다는 것이 이미 나이가 내게 만든 길이다. 아줌마의 길. 할머니의 길. 따라서 순발력이 떨어지는 사고의 전환과 행동 양식 등 세월의 바퀴가 굴러간 부인 할 수 없는 흔적이다.
문득 사하라 사막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던 포장도로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막에서 사라진 길을 만나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내 얼굴의 길. 사막에서 사라져 버린 포장도로. 무엇인가 연결 고리를 찾아본다. 뜨거운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언덕을 앞두고 긴장하며 걷는 여행자의 삶에 그나마 나침판처럼 의지하던 확실한 포장도로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하지만 여행객은 스스로 길을 만들며 사막을 횡단할 것이고 어렵고 고단한 횡단을 통하여 진주처럼 아름답고 금강석처럼 단단한 감춰진 보물을 발견할 것이다. 아마도 어느새 찾아온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넘어가는 황혼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목 놓아 울지도 모르겠다.
우린 또 얼마나 길을 잃고 다니는가? 바른 길 양심의 길을 때로 모른 척 눈감고 타협하며 산다. 더디게 사는 것이 바보 인양 빠른 길을 위해 달려간다. 나눔의 길을 외면하고 남의 것을 탐하기 조차 한다. 황혼의 그날을 바라보며 아쉬움과 회환에 젖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 사막에서 길이 끊어지듯이 우리네 삶에서 길이 끊어짐은 절망을 의미하는가? 신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반드시 열어 놓으신다고 했다. 사막 저편에 있을 오아시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린 희망이라는 새를 발견하여야 한다.

세월은 언제 어떻게 어느새 내게 다가와 주름 길을 만든 것일까?
얼굴에 길을 내며 사는 우리네 인생 일지라도 나이 들수록 더욱 깊은 사랑과 포용과 나눔으로 깊은 치유의 길을 함께 가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주름진 겉모습에 때로 한숨 나오더라도 보다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얼굴에 길을 만드는 것은 확실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다가온 온화한 미소와 지혜로움과 건강한 나눔으로 일상에서의 길을 내는 그런 삶을 맞이하고프다. 그래서 아직 사막이 얼마나 외롭고 그곳의 밤이 추운 것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한 수 알려주는 그런 노년의 길을 가고 싶다. 회상이 있는 추억이 가득 찬 우리의 길을 그들에게 천일 동안이라도 들려줄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하며 살고 싶다. 얼굴에 길이 난들 무엇이 두려우랴.
우린 서로 通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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