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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보랏빛

by 김인영

Dec 09. 2022

딱 일주일 째다

마을버스를 내려 오르는 언덕길이 힘들었다

왼쪽 대퇴부에 통증이 처음 왔을 때 병원을 찾았어야 했다.

지금 나는 걷는 것이 어렵다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나의 건방진 자세 때문이다.

나는 반성한다. 무릎을 꿇고 울며 신에게 불쌍히 여기시라며 반성하며 기도한다.


아쿠~ 휴 ~ ~

젊은 의사가 다가와 검사 결과가 괜찮다고 하니 연세가 제법 있으신 젊잖은 두 내외분들이 깊은 숨을 토하신다.

남편 분의 숨이 훨씬 깊고 길다

부인의 안위를 너무 걱정하신 것이 건너편에 앉은 나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방안에 몇 시간째 함께 앉아있는 분들이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안도의 숨을 내쉬면 좋겠다

앞에 앉아 있는 병색이 완연한 깡 마른 여인은 예쁘고 어린 딸의 배려와 관심에 등을 기댄 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유리창을 사이로 거리감이 있는 반대편 방에서는 우리 손녀 또래의 간호사가 계속 어르신 어르신을 불러댄다. 정신이 드셨는지 목소리를 높여 확인하는 것이다.

고맙다. 환자의 이름도 불러주고 지금은 어떠냐고 물어 주는 꽃 처녀가 이쁘기만 하다.


나에게도 남편이 곁에서 이른 아침부터 동행하여 점심을 건너뛴 채로 곁에서 지켜주고 딸들이 사위들이 고물고물 한 손자 손녀가 응원과 미소를 보낸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친구들. 자매. 믿음의 식구들.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지금 겪는 아픔을 나누어 견딜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이 있다


오늘. 나는 조바심과 두려움의 밤을 무사히 지낸 것을 감사함으로 하루를 열었다. 여전히 상황은 변치 않았으나 더 심한 상태는 아닌 것이다.

평생 처음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나의 왼쪽 발은 어른 코끼리만큼 부어있다

몇 년 전 코끼리 트래킹 한 것을 후회한다

양말조차 신기 불편하고 걷지도 못하는 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불쌍한 코끼리의 아픔 따위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의 장딴지는 보랏빛이다

내게 보랏빛은 비비 추면 된다.

한 여름 장마 속에서 고혹적인 자태로 나타나는 그 보랏빛 꽃을 나는 얼마나 좋아하던가.

그것이면 되었다. 혈관이 막혀 나타나는 생명 없는 색깔은 싫다. 나의 즐거운 일상에 걸림돌이 되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패배자의 어두움이 싫다.

나는 우윳빛 나를 찾기 위하여 다시 여행을 한다.

시티를 찍고. 혈액검사를 하고 심전도와 폐 사진도 찍는다

고무처럼 부어오른 몸의 염증 수치를 낮추기 위하여

항생제도 맞고 수액도 꽂고 있다

어느새 오후로 흐른 하루의 일정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삶의 다양성에 헛웃음이 나온다. 비켜가도 좋으련만.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불청객.

내가 지하철을 공짜로 타게 되던 날 나는 명실공히 삶의 곡예를 잘 마쳤기에 주어지는 포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짜로 주어진 열차를 타고 좋아하는 온천도 가고 감면받은 ktx로 산천을 누비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변변치 못한 건강으로 불완전하고 휘청거리며 호흡한다. 부끄럽기만 하다.

어찌해야 남은 생을 건강을 되찾고

마음에 기쁨을 담아 허락된 시간을 멋지게 마감할까.

초라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나를 맡기어야 돌아가는 일상이 아닌 주체적으로 사랑의 나눔을 하며 살아가고픈 것이 욕심이라 부를 이는 없으리라

계속 떠나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보낸다. 우린 한 배를 탄 동지 아니던가. 걸어 나가 푸른 하늘을 보고 싶다.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를 모과 향내를 탐하고 싶다.

이곳은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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