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입춘이다. 정남진 가까이에 있는 남포면. 이름도 고운 소등섬으로 굴을 맛보러 가기로 했다. 적당히 쌀쌀한 바람이 볼에 기분 좋게 와닿는 아침에 간식을 장만하고 들뜬 마음도 함께 가방에 넣었다. 며칠 전 만났건만 안부 묻기로 시작한 정다운 대화로 달리는 차 속은 준비해 온 유자차처럼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문득 한 친구가 아침에 남편에게 하루를 함께 보낼 멤버를 말했단다. 듣고 있던 남편은 우리와 동행하실 친구의 남편을 언급하며 그분은 어쩌자고 시든 꽃들과 하루를 보내느냐고 하셨단다.
우린 어이없다고 한바탕 웃었지만 생각해 보면 정확히 말씀하신 것이었다. 난 어느새 시든 꽃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아무리 마음은 청춘이라지만 반백 년을 훨씬 더 살아온 나이가 청명 곡우를 갓 지난 우전 차 꽃잎을 어찌 피우겠는가? 하지만 어쩌다 호박꽃보다 더 맥 빠지는 시든 꽃 소리를 듣게 되었을까?
젊은 날 들었다면 모멸감을 느꼈을 법한 호박꽃이지만 오늘은 찬란한 생명력으로 한낮에 활짝 피어있는 호박꽃이 시든 꽃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소란하던 차 안에 잠시 고요가 흐른다.
어느 날부턴가 하루에 섭취하는 비타민 수도 늘어나고 맛을 위주로 상차림을 하던 것이 껄끄러워 잘 씹히지도 않는 잡곡을 8가지 이상 넣고 밥을 짓는다. 고기의 적당한 마블링을 즐겨하던 식사도 아침부터 토마토 상치며 케일로 갈아 마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된장국도 싱거워야 하고 김치도 먹는 양을 조금 줄여야 한단다. 라면은 국물이 일품이라는데 이젠 긴 면발만 골라 먹기도 한다. 식탁의 조심스러움도 모자라 일주에 3번 이상은 산책을 하고 그것도 적당히 숨차도록 걸어야 한다니 걸으며 생각하던 작은 즐거움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남편은 TV 프로그램인 천기누설에 나오는 약초를 보라며 설거지하는 나를 급하게 찾는다.
겨우 , 겨우살이정도로 말이다. 난 진작부터 정성을 담아 끓이고 달여 먹었는데 그이는 정말 목숨 줄이 달린 양 높은 나무에 달린 것을 보고 신기해하였다. 이젠 우리 나이가 되면 건강에 관한 것이라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는 재생 버튼처럼 누르고 또 눌러 머리며 가슴등 여기저기에 꼭꼭 쟁인다. 하루를 시작하는데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단어이다. 평균 수명 120세를 준비하는 전사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나눔엔 인색하지만 웰빙의 조건으로 일 순위인 건강 챙기기를 잊어서도 놓쳐서도 안 된다.
아 옛날이여.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겐 참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셨다. 이젠 그리운 분들을 찾으려면 우선 하늘을 올려다본다. 시들어 사라진 꽃이기 때문이다. 예쁘고 싱싱한 꽃밭에 있을 땐 우린 그저 서로를 바라보면 되었다. 하지만 이젠 곁에 안 계신다.
78세에 청춘이라는 시를 지으신 사무엘 울만을 기억한다. 시인은 장미 빛 볼과 앵두 같은 입술은 내게서 떠났을지라도 풍부한 상상력과 용기가 있으면 된다고 했다. 용기 없는 20대는 이미 노인이지만 용기 있는 60대는 한창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청춘이 되고 싶다. 여전히 꿈을 꾸고 가슴 뛰는 일을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 혈기가 많던 지난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나 또한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젠 시들었으나 포근한 가슴으로 젊은 날 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영혼까지 눈물짓게 하고 싶다.
시들어가는 꽃에 애정을 갖고 바라본 시인을 만났다.
그이는 이렇게 다짐하였다. 시들어 가는 꽃을 보면 놀라지 않게 조심스레 다가가 입술에 닿는 깃털의 촉감 같은 목소리로 ‘아직 햇빛이 반할 만하오.’ 속삭여주어야지.라고.
아 얼마나 멋진 말인가 지금 누군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 격정의 소용돌이가 아닌 배려와 신중함으로 조심스레 가까이로 다가와선 따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내게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반했어요.’라고
시들어 갈지라도 난 여전히 햇빛의 총애와 사랑을 받으며 천천히 아주 사랑스럽게 사그라질 것이다.
당신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