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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육아일기 (사랑과 전쟁)

by 김인영


할머니 육아일기 (사랑과 전쟁)

아직은 어두움이 깃든 새벽.,,

손주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온 딸이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간밤의 상황을 전해주곤 우유병과 함께 아기를 내려놓고 도망치듯 방을 떠난다.

또 간 밤에 깊은 잠을 못 들고 서너 번 울며 보챈 것이 분명하다.안타까운 마음이 스치고 나 역시 비몽사몽인 채로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다.


먼 길을 달려와 아기를 만났다. 주변의 친구들은 어느새 고등학교를 다니는 손주가 있으니 한참 늦은 셈이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바뀐 시간과 거리만큼 이나 적응이 필요하다. 아기는 하루를6시 20분에 분유로 시작하여 7시 15분에 아침을 먹고 잠시 놀다 9시경에 잠을 자고 11시에 간식. 오후 1시에 점심과 3시에 간식과 낮잠 오후 5시 30분에 저녁을 먹고 6시 30분에 목욕을 하고 7시에 마지막 우유를 마신 후 잠자리에 든다.


난 갑자기 바뀌어진 일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하루 해가 뜨고 진다. 물론 가끔씩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유모차에 왕자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기도 한다.

우유 먹이는 것은 물론이고 아기 기저귀 가는 것도 익숙지 못한 나는 남편의 도움이 없인 아기를 돌볼 수가 없음을 고백한다.

깊은 잠을 못 들고 새벽에 울고 보채니 직장이 있는 딸과 사위도 많이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나의 안타까움과 어른들의 피곤함을 배려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먹고 마시고 배설의 시간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기를 들여다본다.


이 작고 고집스럽고 귀여우며 사랑스러운 첫돌박이가 장난감과 대화하기도 하고 음악에 맞추어 신이 나서 흔들어대는 것을 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어디 그뿐인가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뒤척이는 에너지와 몸짓의 유연함에 넋을 놓는다.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울어대는 무구한 울음의 모습을 누군가는 기도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래 많이 울어라. 신에게 닿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느냐.

말을 하기는 하나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니 진정한 창조의 모습이다.


블루베리와 포도와 그리고 아보카도를 특별히

좋아하며 오트밀로 만든 밥은 어른 밥공기로 비워내니 하루 세 번의 배변은 놀람이 아니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보채면 안아주고 시간 되면 음식을 먹이는 것이 거듭되니 난 평소에 문제 있는 허리가 신경이 쓰이어 조심하느라 피곤하다.

문득 나의 젊은 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미야 얼마나 힘이 드냐? 그래도 이쁘지?라고 말이다.

역시 나를 젤 잘 아시는 어머니이시다.

난 오늘도 몸이 힘들다. 하지만 다시 시작되는 아침에 만나는 아기의 붉은 볼과 미소에 정신줄을 놓는다. 이쁘기 때문이다.

버섯 같기도 하고 호박 같기도 한 내 강아지가 8개의 이빨로 오이를 갉아먹는 모습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 결승선 상의 선수가 분명하다.

쩌렁쩌렁 울며 소리 지르는 우렁찬 목소리는 그 옛날 자신의 조상인 의로운 도적 임꺽정의 기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호기심의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만지고 부수며 두들기며 놀다 생각난 듯 가끔 돌아보며 웃는 모습은 과연 두 노인의 노고는 저만큼 밀쳐내는 강한 살인 미소이다.

그 미소와 한 번의 입맞춤을 얻기 위해 우리 부부는 지금 이 순간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날이 지나고 나의 집으로

돌아가면 아직 해 돋기 전의 울어대던 손자 (에이든 현 임)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할지 나는 잘 안다.

지금 남편과 나는 축복의 말 사랑의 몸짓 그리고 확인할 필요 없는 정을 풀어놓고 미완성의 육아일기를 들고 돌아갈 차비를 하며 짐을 다시 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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