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머니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 해집니다.
~ 시 김사인~
내 바인더에서 잠자고 있던 시 한 편을 꺼내 읽고 또 읽으며 저녁을 맞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상황을 전해 듣고 쉼 없이 눈물을 닦느라 시력이 떨이진 듯 눈이 뿌옇다.
1939년 9월 20일 지리산 지킴이로 태어난 것을 자부심으로 갖고 계시던 시누님이 곧 우리 가족과의 인연을 마감하고 멀어지실 것 같다.
늘 당당하고 외로움도 친구처럼 껴안아 품고 살던 분. 인고의 세월을 지나 아무것도 부족함 없어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자족의 본을 보이시는 분.
우리 모두의 기둥이신 분.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나눔과 섬김을 보이신 분. 사랑과 희생의 본이 되시며 산을 넘던 분.
이제 마지막 여정의 테이프를 끊으려 하며
의미 없는 삶을 연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병원을 떠나 반 세기 넘도록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던 휴스타닉 강이 바라보이는 거실로 침대를 옮긴
오늘.
난 절망한다.
그녀 다운 결정이다.
의미로만 점철되었던 지난 한평생.
의미가 없는 삶은 그녀에겐 가치가 없으리라.
떠남을 막을 수 없는 삶의 진리.
무력감. 멀어져 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
울타리 저편.
함께 지낸 그날들이 얼마나 내게 귀한 시간들이었던가 다시 돌려볼 수만 있다면 ~~
그분이 다시 하와이 해변으로 달려와 우리와 함께 저녁을 드시고.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로.
잔디가 있던 나의 작은 집으로.
오소소 오소소.
봄이면 꽃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해변에서 날을 보낸 후
하늘을 메우던 기러기 벗하여 돌아오던 길.
7월 4일이면 하늘로 솟구치던 폭죽을 바라보던
날들.
가을의 사과밭.
겨울에 찾아오던 크리스마스의 추억.
얼마나 얼마나
우리가 함께 나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은지요.
당신의 넓은 가슴속에 품어주신
그 은혜로 우리 가족은 이만큼 왔음을 알지요.
우리의 딸들이 그들의 후손으로 행복할 수 있는 오늘이 다 당신의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공부시간인 듯합니다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떠나고 배웅하는 일
다 공부랍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공부하렵니다.
평안을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