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어디 있지?

by 김인영


남편과 어느덧 41년을 함께 살았다.

그이의 습관과 기호를 나 자신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부부나 이 정도의 세월을 함께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알면서 넘어가고 못 마땅해도 못 고치는 습관이려니 포기하며 끓어오르는 속을 다잡기도 한다. 일상에 서툴러 혹시라도 실수할까 늘 노심초사하면서도 그이가 소중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래도 남편만 한 사람 없다. 그이 덕에 이만큼이라도 누리고 산다. 나의 변덕스러운 습관을 누가 맞추겠는가 한 여름에도 시려하는 내 마음을 달래주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 세상 어느 누가 밤마다 내 손을 잡아주며 이불을 덮어 주겠는가. 타인에게 잉꼬부부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 순전히 이익 분기점을 계산한 나의 얄팍한 속셈 때문이다.


그런 남편이 칠순이 지난 이 가을에 그 어느 때보다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디 있지?’이다. 일상을 끝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하는 첫마디는 ‘여보, 어디 있어? 난 분명 집안에 있고 대부분은 저녁 식탁을 준비하느라 주방에 있다. 후식을 찾아도 어디 있지? 양말을 찾을 때도 어디 있지? 가방, 커피 리모컨 , 셔츠 등 사소한 모든 것을 어디 있지를 뇌이며 집안을 헤맨다. 심지어 냉장고를 열면 바로 보이는 우유도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리곤 말한다. 안 보이는데 ~

그 이가 나에게 묻지 않는 것은 아마 자신의 책과 혈압 약 정도 일 것이다.


홀로 서기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느덧 다가온 칠순을 맞은 세월은 떠남이 가까워 온다는 것이며 외로움이 곁에서 서성거린다는 것이고 석양의 해가 걸린 때이다. 이렇게 마감을 앞둔 촉박한 시간 앞에서 눈앞의 것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이 더욱 다 잡고 떠남을 준비하며 주변을 챙기고 기억하며 비우고 나누며 살아야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전에는 내가 많이 물었다. 여보. 이 옷은 어때요? 오늘 머리 잘랐는데 어울리는지 말해주어요. 어때요? 영화를 무엇을 보면 좋을까요? 주말에 가까운 곳으로 바람 쏘이러 갑시다. 어디로 갈까요? 친구나 아이들이 일상의 문제를 상의해오면 다시 남편의 의견을 묻고 점검하며 의논했다. 난 남편 의존 형이다. 그래서 늘 묻고 또 물었다. 신문을 보며 끄덕 운전을 하며 끄떡 책을 읽다가도 그래 좋아. 당신 마음대로 생각대로 좋을 대로. 늘 질문에 대한 반응은 비슷했다. 그런 남편이 있어 좋았다. 절대 지지를 받으니 몸과 마음이 건강했다. 언니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해도 형부는 옳다고 하실 거라고 동생은 혀를 찬다.


그런데 요즈음 남편이 자꾸 묻는다. 여보~ 어데 있지? 여보. 여보. 여보. 내가 그이에게 질문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그이에게 물을 것이 많은데 남편이 든든해야 내가 설 수 있는데 어쩌나. 문득 더 이상 노래 부르기가 힘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에 어둠과 슬픔이 슬그머니 가을바람 구절초에 꽃잎으로 다가왔다. 물 맑은 호수 가장자리를 메운 보랏빛 꽃잎 사이로 하얀 안개가 낮게 지나간다.


남편이 운동을 시작했다. 어젯밤 나는 잠들기가 어려웠다.

몸 전체에 기를 돌려야 한다며 평소와 다른 새로 익힌 호흡 소리로 잠을 청하니 이상한 고저와 장단으로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나는 짜증이 났다. 그만 멈추고 평소처럼 잠들자고 요청한 후 곧 평상의 고요 속에 깊은 잠으로 빠졌고 어느새 밝아온 새 아침에 나는 조금 반성한다. 그것이 그 별난 호흡법이 남편을 향한 나의 의존도를 더욱 높일 수도 있는 기막힌 처방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생각하며 오늘은 인내의 밤을 보내리라 결심한다. 무조건 우린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향기롭게 그날까지 별을 향하여 손잡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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