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영 Aug 14. 2023

새로운 항해를 꿈꾸며


 

   5월의 여신이 문을 두드리는 어느 날 공연히 들뜨고 그립고 때로 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한다. 5월의 바람은 지난 4월과 다가올 6월과도 다르니 과연 계절의 여왕인 듯싶다.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벗어버리고 어느새 옅어진 라이락 향기에 나를 싣고 아카시아를 찾아  떠나고 싶다.

 새벽 5시경  자리를 털고 일어나리라. 전 날 밤  시간을 예약해 놓은 커피의 향기가 거실을 채우면  남편을 깨우고 아직 하늘에 떠있는 달님을 보며 우린 누구의 간섭도 없이 종달새가 울 것 같은 보리밭을 지나 바다를 향해 달릴 것이다.

  새 차를 샀으니 서로에게 길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그이로 인해 얼마나 기쁘고 기대되는 내일을 생각하는지 알려주며 자주 스킨십도 하고 감사와 당부의 말도 전해야 할 의무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새 식구를 맞이하며 두 명의 정들었던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내 집 앞에 다소곳이 서있던 너. 결혼 기념으로 받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백색의 겸손과 순결의 모습으로 나를 맞던 날의 감격이 새삼스럽다. 꼬옥 필요한 순간에 발이 되어 주던 나의 친구. 정든 곳을 떠나며 가족의 대 이동이 이루어지던 때 너를 보내라고 모두 권했고 나 또한 지인들의 충고가 옳은 것임을 잘 알지만 그냥 너를 품고 있고 싶었다. 집도 짐도 줄이고 가뜩이나 복잡한 도시 서울에서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눈치를 보면서도 경제관념이 부족한 상태로 함께 4년을 보냈다. 전처럼 네가 필요한 때만 너를 부르고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단둘이 길을 나서면 나만의 애인인 양 너를 대하며 편한 숨을 쉬고  곱게 다루곤 했다.   마음과는 달리 앞서 질러가는 세월에 차도 나이를 먹더구나. 늘 네 곁에 있던 크고 듬직한 남편의 차를 보내기로 했다.

이제는 쉼이 필요한 남편에게 더 늦기 전에 새 차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우리가 선택할 새 차는 그이의  마지막 차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날 밤 실로 오랜만에 방망이질 치는 심장으로 밤을 밝혔다. 마지막 차라는 말은 내겐 상처를 동반한 남편과의 이별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은퇴하던 때도 실감하지 못했던 막막함과 무능함과 그리고 슬픔이 나를 덮쳤다. 이제 때가 가까워 오는구나. 어쩌나 그이가 곁에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사나. 아침을 어떻게 맞으며 긴 하루를 홀로 어찌 보내나. 얼마 전 경험한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픔이 아직도 나를 허하게 하는데 또 다른 이별의 순간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참 길고 지루한 밤이었다.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어제의 태양은 아니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산책을 하며 대화를 하여도 여유와 평온함은 그 자리에 없었다. 자꾸 눈물이 나왔다. 나이 65세를 몇 달 안 남겨 놓은 할머니의 자세와 태도는 아닌 것 잘 알겠는데 나의 마음은 왜 그리도 쓸쓸했던가.

 2 주가 흘렀다. 나는 너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현실적인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마음을 바꾸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원치 않으면 보내지 말자고 자신은 괜찮다고 하던 남편이 제자에게 연락을 하고 몇 번의 통화를 마친 후 어느 날 낯선 이가 너를 몰고 갔다. 나는 며칠을 네가 서있던 자리를 쳐다보지 못하고 떠나보내기 전 남편 모르게 찍어 놓았던  네 모습을  한참씩 들여다보곤 했다. 이제는 낯선 곳에서 바뀐 번호로 아직은 정들이지 못했으리라 짐작되는 새 가족을 만나 생활하고 있을 너를 생각한다. 내게 했던 것처럼 조신하게 그리고 우아하며 멋있는 모습으로 자알 지내길 바란다.  너를 보낸 후 너의 친구는 비교적 쉽게 떠내 보냈다. 그리고 새 식구를 맞은 것이다. 이제 말했듯이 남편과 나는   새로운 항해를 꿈꾸고 있다.

 선장이 오랫동안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새로운 식구에게 정 들이며 너희들과 함께 있을 때처럼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을 꿈꾼다. 아직 오지 않은 날과 펼쳐질 아름다운 일에 대한 기대감과 경이로움으로 너를 보낸 것에 대한 아픔과 미련은 잊고 떨치련다. 한때 스쳐간 아련하고 소중한 그러나 기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아름다운 첫사랑처럼.   
 .

작가의 이전글 이젠 떠나도 돼요 (#18 오렌지카운티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