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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Aug 16. 2023

따뜻한 마음들이


따뜻한 마음들이

늦은 저녁 현관 벨이 울린다. 등기로 된 우편물을 전해주고 황급히 돌아가는 택배기사님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과 함께 문을 닫고 봉투를 열어보니 한 해를 함께 보낸 낯익은 유치원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풀잎 반 .시내 반. 이슬 반. 새싹 반 .싱그러운 이름을 가진 반에 들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은 참 행복했었다. 향기 나는 이름들처럼 작고 어린 생명들이 내게 삶의 의미를 산더미만큼 부어 주었다.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잊고 때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때로 내가 마치 그들의 친할머니인 듯한 표정으로 기어와 무릎에 올라와 안길 때는 순수한 마음 밭에 감동하곤 했다.


“할머니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너무 재미있어요. 우리 생각 많이 해주세요. 추운 겨울 잘 보내세요. 오래 사세요.” 글쓰기가 서툰 어린이들은 그림처럼 자신의 이름도 곁에 썼다.

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짐을 느꼈다. 말의 온도다.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익혀진 교육의 힘이다.

노는 듯이 수업을 진행하였다. 물론 곁에서 함께 지켜보며 아이들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 나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교육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족하고 많이 부끄럽지만 이렇게 작은 일로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나름 자긍심을 갖는다. 부드럽게 그리고 꾸준하게 어린이들이 좋은 인성을 갖춘 인격체로 자라도록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여리고 작은 나무에 물을 주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꽃을 피워 세상을 환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일에 한몫을 한 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인공 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는 세상에 이미 와있지만 고사리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인간의 몫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할머니 꽃게와 원숭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쓴 것을 읽곤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즐거웠던 기억이 새롭다. 어린이들은 손동작을 한 번 더 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다음 주가 되고 도 몇 주가 되어도 잊지 않고 가끔씩 우린 되풀이했다. 땅에 항아리를 묻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쓴 것을 읽으며 지난 가을 내가 지혜로운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 기억이 나고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매번 수업을 마칠 땐 지혜롭고 용기 있는 어린이가 되고 나눔과 배려와 사랑을 나누는 어린이가 되라고 다짐하며 헤어지곤 했다. 한 주 후 만나면 친구에게 배려의 모습을 보여 주었느냐고 묻고 어떻게 부모님을 웃게 해 드렸냐고도 말해보라고도 했다.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즐겁게 놀라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함께 어울리고 놀이를 공유하는 삶이 정서를 풍요롭게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를 외우며 준비하는 것은 내겐 늘 도전이다.

오늘도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데 할머니가 게으름 부리지 말라고 해서 유치원에 왔다는 아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내게 같이 사는 쌍둥이 형이라고 답하고 책을 만 번이나 읽었다고 으스대며 자랑하는 아이들. 자신은 멋쟁이니까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고 다짐하는 어린이들. 내가 만난 어린이 모두가 이도 잘 닦고 정리 정돈도 잘하며 부모님과 주변 분들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고 밝게 자라기를 바란다.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름다움을 향한 희망의 꽃씨를 퍼뜨리는 어린이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아쉬워요. 귓가를 맴도는 어린이들의 합창이 들려오는 시간이다. 일 년 자알 살았다. 내가 감사함을 전 할 시간이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많이 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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