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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Nov 28. 2023

쾌활한 그녀

쾌활한 그녀

11월 비 내리는 올림픽 공원에서 창을 통해 비치는 사라지는 것들이 자리한 것을 바라보는 것은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당연한 것이 조금은 아쉽고 결국은 체념 속에 받아들이는 작은 자가 되곤 한다.

사라져야 돋아나고 버려져야 피어나는 것 아니던가 비 내리는  길 위의 낙엽은 작년의 것과는 다를 께다.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


즐거운 대화 속에 기쁨을 느끼고 각기 살아온 시간의 방향이 다르지만 아메리카노와 라테의 조합처럼 건강한 점심 식사를 마친 후의 대화 또한 건강하다.


문득 마음도 몸도 건강한 친구 같은 언니가 떠오른다. 1941년 생 뱀띠란다.

20대에 미국에 건너가 50년 이상을 그곳에서 살았으나 영어는 못하고 한국말을 잘한다고 기운차게 고백하는 그녀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하신 분인지라 멋진  정직함과 겸손함이 보기 좋다.

이미 오래전 간호사로 은퇴를 하였으나 어른들의 Day care 센터에서 입소자 분들과 춤도 추고 노래도 하시고 불편한 곳을 지압도 해드리는 O.J 허.

그녀는 인기 많은  82세의 현역 간호사이다.  


그녀는 말한다. 모든 것이 막히고 단절되었던  코로나의 시간에도 그녀의 집은 늘 열려있었다고.

나는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여전히 거실 앞 수영장은 사람들로 붐비었을 테고 운동 후 그녀가 애써 가꾼 토마토 가지 오이 고추 상추로 풍성한 초록이 사람들의 얼굴 위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녀가 있는 곳은 나눔이 있다. 웃음이 있다. 그리고 에너지가 넘친다.

새벽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골프를 치고 누구든지 부르면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O.J. 님.


문득 남편과 딸들에게 힘들다고 아프다고 외롭다고 투정 부리는 내가  부끄럽다.

익숙지도 않은 서울 여행길에 양평에서 김장을 담고 용인을 거쳐 남산을 오르고 저녁을 송파에서 맞았다는 하루의 일정이 내겐 무용담과 같다.  다음 날 이른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나를 만난 그녀는 우리의 만남이 기적 같은 일이라며 또 긍정의 마인드를 보인다. 하긴 급작스레 계획이 변경된  것은 작은 기적이다.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고 감사라면 그렇다. 우리는 오후 내내 나의 20대에 함께 한 여행의 이야기와 지금은 다 잊힌 추억들을 꺼내어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했다.


나는 물었다. 언니는 무엇을 앞으로 계획하는가? ' 나의 묘비명엔 쓸데없이 바쁘게 살다 간 여인'이라고 쓰길 바란다고 한다.  언니는 무엇이 중요한가 나는 또 묻는다. '사람'이란다.

모두들 포장하고 약점을 감추며 사는 세상에 맑은 여인. 풍성한 여인. 그리고 보람차게 살고 계신 분을 만나니 기쁘고 나 또한  엔도르핀이 솟는다.

그분이 건강한 삶을 사시는 비결을 발견한다.

나를 낮추고 늘 열린 자세로 배움을 수용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는 것.  운명이라 불리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는 아주 귀중한 한 가지를 더 발견하였다.

여전히 그분의 가슴에 살아있는 활화산 같은 열정.

그것은 아주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었다.

꺼지지 않는 사랑. 어쩌면 그것이 동성을 넘어 이성을 향한 것일지라도.

추측을 해보는 이 순간이 가능성을 향한 바다로 나가는 희망의 닻을 띄운다.

부디 지금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뵐 수 있는  다음번 만남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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