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날씨가 포근하다고 기상캐스터가 전해 준 정보를 믿고 무거운 코트가 버겁던 차 가벼운 옷 몇 개를 겹쳐 입고 밖으로 나오니 웬걸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다시 돌아가기엔 조금 불편한 발이 신경이 쓰여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늘 한가한 정류장이 멀리서 보니 까마귀 떼들이 모여있는 듯 검은 무리들이 서 있다.
차에 올라 흔들리며 내려가는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가 평소보다 소란스럽다. 한데 거슬리기는커녕 그들의 높고 낮은 목소리며 웃음소리가 한 겨울 노루가 눈 밭을 뛰어가는 듯 가볍고 맑고 상쾌했다.
잠시 후 나는 까만 까마귀 떼 들이 집 근처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인 것을 깨달았다
나 보다 큰 키와 덩치로 그리고 긴 머리. 더구나 오전 10시에 가까운 시간이니 난 그들의 신분을 알 수 없어 대학생들로 판단의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모두 비슷한 차림이다,
긴 패딩코트와 검정 백 pack. 검정 신발.
슬쩍 처다 본 코트는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상표가 붙어 있고 책이 들어 있을 가방도 비슷하다.
그리고 학생들만큼 고단한 부모님의 얼굴이 비친다.
지하철로 갈아타러 오는 내내 소란스럽던 차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들린다.
'내일 끝나고 뭐 해?'
아 ~지금은 시험기간. 학년말 고사 기간인 것이다.
시험이 끝난 후 무엇을 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학생은 어머니가 옥수수 3대를 쪄놓고 기다리신다고 했다.
지난날 우리들은 시험을 끝낸 후 무엇을 했던가? 긴장과 수면 부족의 시간을 보낸 피곤함으로 소리치며 친구들과 달려가던 극장도 오래 전 몇은 문을 닫았고 아마도 학교 앞 분식집과 빵집도 사라졌으리라. 아버님 손을 잡고 백색의 스케이트를 사던 동대문 운동장의 상점도 기억 속에만 자리할 뿐이다.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당구장을 드나들던 모자가 잘 어울리던 이웃집 오빠는 무엇을 할까?
엄하시던 훈육주임 선생님은 아직 세상에 계시려나?
내게도 이맘때 시험이 끝난 후 돌아가면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 주시던 할머니와 맛있는 상차림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계셨는데.~~
오늘 만난 저 어린 꽃 봉오리들은 모르리라.
그 시간 자신들과 함께 버스에 오른 할머니가 얼마나 그리워하는 것을 그들이 지니고 있는지를.
그들에겐 힘든 시간 속의 시험 기간이 축복이고
옥수수를 쩌 놓으시고 기다려 주는 어머니가 반기는 그 집이 세상 그 어느 곳 보다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모르리라.
지금 내가 앉는 자리. 나와 손 잡고. 나를 스친 이. 눈에 들어온 풍경. 오늘 지나온 그 길.떨어지며 웃던 나뭇잎.아가의 울음소리.길가의 고양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부디 꽃 봉우리여. 향내 나는 멋진 이가 되어라.
가슴 따뜻한 사랑의 사람이 되어라.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이여
살아있음이 축복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