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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Dec 20. 2023

가야금 줄을 자르듯(선물 )

이제야 겨울답다. 지금이 겨울이다.

하늘에서 눈도 조금 내렸고

귀를 지나 볼을 스치는 찬 바람을 폐부 깊숙이 들이 마시니  더없이 좋다.

2023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새해에 세운 계획이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 삶의  계획 속에 있던 분의 부재를  아픔으로 간직한 채   뜨는 해를 맞고 보내고 나니 어느새 연말이다.

아쉬움인가. 새로운 도전을 향한 시간인가.


살아있는 자는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때가 되면. 마쳐야 할 숙제가 있지 않은가.

성탄의 트리가 세워지고 불이 밝혀지니

누구보다 무엇보다 먼저 생각나는 손자와 손녀이다. 

한 번이라도 더 어린것들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은

우리 부부는 그 누구보다 먼저 아이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보내고 싶다.

서둘러 겨울 모자와 두툼한 양말과 장난감, 외투, 책,  

그리고 트리에 매달 산타모형을 골라 넣으며 좀 더 큰 산타릏 고를까 잠시 망설이다 아이들 손가락 사이즈를 생각하여 작은 것을 넣었다.

사다리를 타는 산타가 이미 준비되어 있을 트리에 올라앉으면   박수를 치며 웃고 발을 구르며 

시선을 높은 곳으로 향하여 바라보리라.

 늘 바쁜 딸들과 사위들에겐 와인을 곁들여  한 끼 정도 즐길 수 있는 식사비를 넣어 우체국으로 향하고 영수증을 받고 나니  왠지 개운했다. 해야 할 것을 일찍 마친 까닭이다


며칠 후 조간신문에 실린 칼럼을 보고  부끄러웠다.

늘 나는 대충이다.

살림도 대충. 운동도 대충. 악기연습도 대충.

즐거우면 충분하고 내가 기쁘면 그만이다.

그만하면 됐다고 늘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곤 한다.

대충이면 세심하지 못하다. 배려도 조금은 덜 한 것인가.


칼럼을 쓴

그녀는 피부색도 눈동자도 나와는 다른 여인인데 대학에서 동양학을 가르치며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외국 여인의 연주를 듣고 감탄을 연발하던 기억이 있어 신문을 자세히 살펴보니 동일인은 아니다.

글의 내용인즉 선물을 주는 것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기에  진심을 담은 선물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로 출발하는 젊은이들의  결혼 선물로 자신의 분신 같은 12 가닥 가야금 줄을 잘라 부부의 영원한 결합을 의미하는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 곱게 선물하였다고 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함께 연주하시는 고수 분은 장구를 칠 때 쓰는 궁글채와 열채를 신혼부부에게 선사했단다.

신선한 발상이다, 이 분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으로 예술과 일에 필요한 물건,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중한 물건을 포기한 것이다. 지금 내게 꼭 필요하지만 누군가의 손으로 건네졌을 때  큰 의미와 기쁨이 전달되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깨우치고 실천한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자 손녀에게 숙제를 하듯 서둘러 마련하고 포장도 제대로 안 한 채 소포 상자에 넣어 빠른 항공을 찾아 보내고 하루라도 일찍 도착할 것을 바랐다.

그리고 돌려받을  감사의 말과 손짓을 기대했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그들의 필요를 살피고 진심을 담았어야 했다. 

훗 날 할머니를 기억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어야 했다. 

다음 선물은 좀 더 고민하고 내게  희생이 따르고 내주기 쉽지 않은 것일지라도 할머니가 내어준  가슴 한 편이  담긴 것으로 준비하리라 다짐한다.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계절이 돌아오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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