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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Mar 04. 2024

새 친구

   

 석양에 벌판을 가득 수놓은 붉은 꽃 양귀비와 하늘을 뒤덮은 새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나.

' 수고했어요. 앞으로 남은 날 부디 지금처럼 그만큼만 행복하세요.'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새 식구가 생겼다. 새 친구가 생겼구나.

때로 외롭고 기운 달릴 내일의 나를 위해 사용하라고 건네준 것이다.

 특별히 애쓰지 않고 줄 서서 기다린 적도 없는데 내게 다가왔다.

그 친구를 건네주며' 너무 젊어 보이시니 꼭 신분증을 지참하고 다니세요.'라고 방긋 웃으며 말하는 친절한 직원에게 언뜻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주민센터를 나왔다.

 더운 여름날, 깊은 바다 빛을 한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았다.

눈도 나쁘고 숫자에 약한 내가 대충보아도 10개가 넘는 카드 번호가 적혀있다. 드디어 어르신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어느새 이만큼 길을 왔단 말인가.

 

동구 밖 느티나무 밑에서 떠나간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를 기다려 본 기억도 없다. 누군가를 애타게 사랑해 본 젊은 날의 절절한 아픔 또한 없다.

배고파하며 운 적도 없고 특별히 미워한 사람도 없다.

꿈꾸며 성실하게 나름 걸어왔을 뿐이다. 좋은 시절에 태어나 부모님과 가족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살아왔다.

 젊은 날 넓은 세상에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이요 감사의 목록이 아닌가.

카드의 뒷면에 이름을 적고 살펴보니 푸른 바닷길인 듯 보이는 길 위로 언뜻 지하철  모양의 그림이 보인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니 내게 다가온 친구 덕분에 적지 않은 비용이 절약될 것이다. 내친김에 65세 이상 어르신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찾아보니  내겐 과하다 싶을 특혜가 있음을 발견하니 은근히 흐뭇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K.T.X  할인을 받게 되며, 고궁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공연장도 50% 할인을 받고  임플란트도 무료로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됨은 물론 나이 든 사람을 대접하고 배려하는 사회에 감사한 마음이다. 결승점 가까이 오시느라 애 많이 쓰셨으니 앞으로 남은 날 부디 좋은 것 많이 보시고 멋진 곳으로 여행도 많이 하시라는 뜻을 담은 뒤 따라오는 인생 마라토너들의 사랑의 마음 일 것이다.

 

감사함과 더불어 싸한 심정이 가슴을 스치는 것도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힘 있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날은 이제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마음은 꽃 양귀비의 화려한 벌판을 꿈꾸어도 한편으론 꽃과 잎이 떨어진 나무 위로 내리는 눈송이가 떠오르니 가슴이 마냥 더울 수만은 없다. 고백하건대 언제부턴가 하늘을 가득 메운 한 무리의 새보다는 개천가에 홀로 서 외발로 지탱하고 있는 두루미 한 마리에 눈길이 간다.

아무렴 어떠랴, 나는 이제 새로운 친구와 함께 정을 나누며  더욱 자주  원하는 곳의 문을 넘고

꿈꾸며  행복한 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만의 나침반을 들고 남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꿈은 머릿속에 머무는 명사가 아니라 발품을 팔고 손으로 움직이는 동사라고.'

친구야 고맙다. 나이 들어 만나니 더욱 귀한 것을 알겠구나.

남은 날 함께 손 잡고 먼 길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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