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이다.
딸로 태어나 소녀 시절을 걸쳐 오늘에 이르렀다.
나에게 다음 생이 허락된다면 여전히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저 마음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라는 친숙하고 평범하게 받아들이던 단어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니다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기는 커녕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인 .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던 이에게 그다지 좋은기억이 있다.
재래시장에서 들었을까? 그날 그곳에서 땅에 떨어진 배춧잎을 보았다. 아무튼 그들이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 왠지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모님 이라던가 선생님 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아주머니라도.
아가씨라고 불리던 때는 언제였던가? 당시엔 나는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걷고 생각했다.
그때는 꿈으로 곱게 포장된 찬란한 세계가 나를 이끌었다.
말도 행동도 조심해야 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고의 방향과 말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초석을 단단히 다지고 싶었다. 반듯한 미래를 향한 준비의 기간이었다. 조금 벅차도 인내 후 돌아올 보상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단정함을 멀리하고 나를 버리고 내가 이룬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살았다. 버리고 나니 나를 잊었나 보다.
입던 옷을 다시 입고 좋아하던 음식을 멀리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감수성은 억누르고 체면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아주 가끔 되풀이되는 일상이 답답하기도 하였다.
아마 나의 육체는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조금씩 싱싱함을 잃어갔다.
나는 아줌마였다
오늘의 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할머니다.
이제 나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시간과 물질과 관계로부터 자유함을 가졌다.
은빛 세계로 들어서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을 수용한다.
사소한 것이 감사하다. 이제는 굳이 버리려는 노력 없이 비워지는 듯하다.
나는 어린 딸. 아가씨. 아줌마를 거쳐 할머니가 되었다. 봄 여름 가을지나 겨울에 섰다.
지하철에 오르니 경로석이 보인다.
빈자리에 앉아 영화 한 편을 보러 가는 오후의 시간.
참 좋다. 할머니의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