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두려움의 1위는 번개와 쥐였다.
벼락이 동반되는 번개 치는 밤이면 방바닥에 깔려있던 이불 밑으로 숨어들곤 했다.
어쩌면 내가 잘못한 무엇 때문에 벼락이 내게 떨어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예정 없이 장소와 시간을 정해 만남을 갖는 번개팅이란 단어가 반갑고 정겹다.
일주일에 두 번의 번개팅을 갖었다.
9일에 만난 여고 동창생들이 급작스레 인사동에서 18일에 번개로 다시 만났다.
인사동에서 작품전시를 하는 친구 덕분이었다.
고맙고 멋지게도
자신들의 작품을 출품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화가들 모임에서 갖는 일종의 바자행사였다.
드레스 코드를 초록과 빨강으로 하라는 전달을 받고 걸친 얇은 코트로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아주 조금 고생을 하긴 했어도
번개의 맛과 멋을 충분히 즐기고 돌아왔다.
아쉽게도
거리와 형편이 닿지 않아 함께 하지 못하는 세명을 제외하고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은 참 행복했다.
연말의 불빛이 아름다운 인사동에서 우리를 초대한 친구의 멋진 식사대접 위로
여고 시절 선생님과 친구들을 기억하며 술과 음악이 없어도 추억여행 속에 흠뻑 취했다.
나는 그날 우산을 하나 구입했다.
오늘 이미 내린 눈으로 길은 미끄럽지만 블루에 그려진 인생 사다리의 우산을 들고 외출할 계획이다.
번개는 또 다른 번개를 치는 까닭인지 다음 달에도 우리는 만나서 만두를 빚으며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지금 세상에 만두를 빚는 모임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기대감을 갖게 하게도 한다.
20일 문자가 떴다. 우리 모임의 대장이 번개팅을 오후에 하자고 하신다.
조금 늦게 나갔지만 차를 드시며 기다려 주신 두 분과 일을 마치시고 돌아오신 회원과 합류하여 2024년의 소중했던 만남을 기억했다.
2025 년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책을 받고 회원분의 대접을 받으며 몸에 좋은 오리로스로 몸을 데웠다. 연말의 식당은 붐비지만 따스한 분위기로 기분도 좋다.
내년엔 얼마나 자주 모일런지는 알 수없다.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아는 나이.
겸허히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며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여백 위로 계획을 세운다.
이럴 때 우리는 신의 가호를 기도한다.
2024년을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날도 있었으나 이만큼으로 창을 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025년. 우리가 기대하며 맞이할 새로운 시간 속에 무지개 빛의 아름다운 세상을 허락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