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창문을 열어본다.
기대했던 눈은 보이지 않는다. 눈. 어제 산등성 빈 숲에 남아있던 잔설이 떠오른다.
기억이 나는 것은 이미 사라진 것. 그 사라진 시간이 가슴을 풍요롭게 채운다.
충동적인 성향은 해가 바뀌어도 변치 않아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오며 늘 가고 싶었던 양수리를 찾았다.
그곳엔 수종사가 있었다. 좋은 벗이 방문 후 올려주신 글과 사진을 보고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언젠가 물의 정원에서 올려다보며 마음에 품은 이름도 고운 사찰. ~물속에서 들려오던 종소리.
급 경사의 비탈길을 올라 주차를 한 후 수 십년 전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을'
털털 거리는 차를 타고 산을 오르던 날의 작은 사고를 떠올리며 우리는 웃었다.
남편에겐 아슬아슬했던 그날이 무용담인 듯싶기도 하다.
하긴 높은 산 중턱에서 멈추어 버린 사고를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전장을 탈출한 셈이긴 하다..
오늘도 조금은 용기가 필요한 운행이다.
그때는 초 여름. 오늘은 늦가을 쯤.
주차 후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올라간 그곳은 기대만큼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 주었다.
한 겨울 쨍한 맑은 날 은빛으로 빛나며 흘러가는 남한강을 바라보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지난 세월 속 숱한 사연들을 품고 있는 은행나무와 석상들.
운길산 중턱의 수종사는 모든 것이 보물인 듯싶었다.
다시 곡예를 하듯 산을 내려와 찾아간 카페는 '수 수'.
물과 나무란다. 수종사의 이름이 나를 끌었듯이 '수수' 또한 나를 매료시킨다.
카페에서 나는 자꾸 웃었다.
커피를 마시며 웃고 , 아직 지지 않은 갈대를 보고 웃고, 빛나는 강을 마주하는 하루에 계속 웃었다.
살아있음이 감사했다.
커피도 달콤한 케이크도 그리고 몇 장의 그림이 걸려있는 갤러리 카페.
야외에 자리한 넓은 공간이 모두 나를 위한 공간인 듯 강이 나를 맞는다.
1.000 평의 땅에 자리한 카페 수수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조금 쌀쌀했던 북한강 가에서 모닥불을 마주하며 나누던 카페 사장님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오전에 올랐던 운길산 수종사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에 모닥불을 마주하고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시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IMF로 무너진 사업체를 정리하고 그곳으로 들어와 술과 함께 십 년 넘게 세월을 보냈단다.
불어난 체중과 나빠진 건강으로 지내던 차 부인의 제안으로 살림집을 카페로 차린 지 8년.
이곳은 원래 민비왕후 민씨 일가들이 살던 곳.
6.25 동란 때엔 미군들이 짐을 풀었고, 야전 병원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단다.
예빈산 예봉산 검단산 등 좋은 산과 물을 바라보는 풍수로 보아도 좋은 명당자리라며 구입할 때는 주변에서 제일 싼 땅을 산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며 웃으신다.
이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여 새벽 6시에 기상하여 주변을 청소하느라 4시간을 보내는 일상으로 시작하며
지금은 행복하다고 하시며 돈만 찾던 지난날을 잊고 이제는 의미를 함께 찾는 날이 되었다고 하신다.
그이는 한 그루 겨울나무였다.
나는
아침 거리로 산 치아바타를 가방에 넣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봄이 되면 다시 운길산을 찾고 '수수'에 오자고,
멋진 2025년의 첫 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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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수종사
카페 수수
성북 낙산여신 김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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