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

by 김인영



‘어서 와라.’
떠나온 지 일주일째부터 시작된 똑같은 어머니의 말씀이 어느덧 석 달이 되어간다. 이젠 딸의 긴 휴가를 인정하고 기다리시면 좋겠건만 때론 어린아이처럼 보채시고 때론 역정 섞인 말씀으로 전화를 마무리 지시니 좌불안석이다.
남편이 일터를 잠시 비워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어머니가 걸렸다.
허락받은 6개월의 시간을 사는 곳을 벗어나 훌훌 떠나고 싶었다.
머물 곳도 있고 그곳은 또한 늘 마음으로 고향이라 여겨 그리움을 보내는 곳이다. 무엇보다 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처음엔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하려고 했다. 하나 어머닌 건강상의 이유로 단호히 떠나시는 것을 거부하셨다. 타지에서 사는 까닭에 친지도 없고 뒤늦게 만난 친구에게도 마음을 주시지 않은 어머님이시라 혼자 남겨놓고 가는 것은 무리였다. 생각해보니 병원이며 사소한 장보기 집안 청소 등 걸리는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한 번도 혼자 계셔 본 적이 없는 어머니였다.
서울에 있는 나의 자매들이 올라오셔서 함께 계시자 고해도 요지부동으로 마음을 굳히신 어머니를 나름대로 배려하여 우리는 3개월 만을 다녀오기로 했다. 남 보기엔 극진히 어머니를 모시는 딸 같았으나 서울로 떠나시지 않으시는 어머니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 마음의 부담을 덜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심 실망과 작은 낭패도 느꼈다. 다른 딸들도 같은 자식인데 왜 안 가시려는 것인지, 늘 서울에 살고 싶어 하시면서 그리도 완강하신지 이해가 안 되었다.
떠나는 날이 다가와 집을 나서던 새벽엔 조금 후회가 되고 죄송했다. 왠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기도 했다. 꼭 안아드리고 잘 다녀오겠노라고, 전화 자주 드리겠다고 인사를 하고 콜택시에 오르니 괜히 눈물이 났다.
하지만 정작 여행을 떠나 도착한 그곳에선 옛것을 추억하며 많이 흐른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이들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즐거웠다. 그래서 지구의 반대편 내가 살고 있던 한국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난날 너무 어리고 살기 바빠서 못 보고 지나쳤던 것이 눈 속에 들어오니 갈 곳도 많고 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였다. 예전에 다니고 보았던 것조차도 새롭고 흥미로웠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니 더욱 정겨웠다. 작은 딸을 출근길에는 배웅을 하고 저녁을 함께 먹으니 하늘에 나는 새도 부럽지 않았다. 귀한 시간을 두 번 다시없는 듯이 살고 싶었다. 나는 휴가에도 여전히 바쁜 남편을 적당히 설득하여 수없이 센트럴파크를 가고 호수 앞에서 오전을 보냈다. 먼 곳에서 달려온 큰 딸아이 내외와 함께 브로드웨이 뮤지컬, 링컨센터 음악회, 뮤지엄 투어 좋아하는 노천카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아름답고 익숙한 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바빠 기다리는 분이 있다는 것이 때로 잊혔고 일주일에 두세 번 하는 통화 때는 어서 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불쑥불쑥 죄송스러웠다. 그사이 언니 동생의 안부 전화는 매일이었고 장마철을 마다하지 않고 내려와 맛있는 것 대접해드려도 어머닌 여전히 우리 내외만 기다리는 해바라기 노인네였다. 어쩌다 어머니가 그리 약해지셨을까? 내가 아는 어머닌 항상 매사에 긍정적이시고 대소사에 앞장을 서야 편하신 분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함께 나가면 내게 언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고 피부는 오히려 더 탄력감이 있으셨다. 음식은 또 얼마나 맛깔나게 하시는 분인가? 어머니가 한 여름 모시를 곱게 다려 입고 나가시면 내 엄마지만 참 멋졌다. 모두가 힘들다던 시절 우린 어린이날이 되면 따로 케이크를 장만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촛불을 켜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자모회의에 오시던 그날엔 나는 괜히 신이 나서 우쭐하곤 했다. 멋진 어머니인 까닭이었다. 어린 나이에 무슨 멋을 얼마나 알았으리오 마는 엄마가 명동의 유명한 미장원에서 팁을 주어가며 쇼트커트를 하신다는 것도 내겐 멋진 일로 비쳤다. 이 나이에도 많은 돈을 지불하는 미장원을 다니는 배짱이 내겐 없다. 내가 약간의 감수성이 있는 것은 다 어머니의 내력이다.
팔자가 그런 것인지 철들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사는 삶에서 늘 가슴에 그리움을 묻고 다닌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 탓에 드러나 보이지 않을 뿐 그리운 것들을 뒤로하고 밀리는 삶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가 그리움을 감추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 어쩜 잠시 고독을 잊고 많은 날들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분노할 때 어머니는 내 편이 되어 주셨다. 내가 아파할 때 어머닌 내게 따뜻하게 보듬어 주셨다. 좋은 소식이 들리면 어머닌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다. 그래서 든든했다. 많은 날 항상 내 삶의 중심엔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다. 지나온 긴 세월이 그랬다. 3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내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동생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어머닌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밤과 낮으로 하시던 전화도 뜸하다고 했다.
내가 집에 도착하던 날 긴 여정으로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의 피곤함을 잊게 해 준 것은 역시 어머니의 따스한 저녁 식사였다. 민어 찌개와 김치를 먹으며 난 참 편안했다. 정성과 사랑이 녹아내린 소박한 식탁 앞에서 그동안 나름 좋은 곳과 비싼 값을 치르며 먹었던 것은 포장이었음을 알았다. 어머니의 반찬엔 그들을 밀쳐낸 뜨거움이 있었다. 그리움과 반가움으로 빚고 설렘으로 밑간을 하여 완성된 사랑의 결정체이었다.


그날 넓고 밝은 내 집에서 가장 크게 빛나는 것은 어머니의 환한 미소였음을 고백한다. 이제 다시 어머니와 함께이다. 매몰차게 떠났던 딸이 돌아와 철들어 모시기로 한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도한다. 마지막 계시는 날까지 내가 어머니의 기둥이 되어드리라고. 이제껏 어머니가 내게 그러셨듯이. 오늘도 더운 날이다. 돌아왔으니 이제 함께 그늘을 찾아 손을 꼭 잡고 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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