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 /고재종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허허허
큰 대접받았네 그려!
익숙하지 않은 단어인 주막과 소주와 쭈글쭈글한 모습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시를 읽으며
그림이 그려짐은 웬일일까
단 돈 오천 원으로 부드러움을 살 수 있다니
이미 굳어버린 어깨와 허리
그 무엇보다 굳어버린 돌덩이 얹힌 가슴을,
순한 두부찌개에 얹힌 소주의 목 넘김으로
장작같은 나를 부드럽게 할 수 있다니.
작은 것으로 큰 대접을 받았다고 하시는
순박함이라니
더 맛난 곳을 찾아다니고
좀 더 화려한 곳이 익숙하다며
거추장스러운 옷을 껴입고 여전히 가슴 시려하는 내가
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
볼그족족한 얼굴로 허허허 웃는 그들이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드는 새벽이다.
나 비록 주막에 있지 않아도
쭈그렁 노인은 아닐지라도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활짝 웃는 웃음을 짓고 싶다.
파안.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