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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보내며

by 김인영


명절 2일 전이다. 모두 서둔다. 차로 기차로 비행기로. 만남의 연속이다.

사람을 그것도 진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자연을 만나러 떠나는 이 또한 바라던 시간일게다. 막힌 도로를 기어가기도 하고 제시간에 도착할 것이 거의 분명한 열차에 의지하여 차창에 실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달려온 세월을 반추하는 이도 있으리라. 기어코 하늘을 날아 다른 세상을 만나고 해냄의 뿌듯함으로 따스함을 즐기는 젊은이도 떠오른다.


나는 다가오는 명절에 움직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곳저곳 여행사를 살피기도 했지만 결국 긴 연휴를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아침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인간답게 하는가. 부족한 잠을 한 시간 더 취할 수 있다는 것. 꼭 뉴스로 시작하는 하루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아침 식사를 건너뛰어도 된다는 것. 사 놓고 밀쳐두었던 책을 몇 장 읽을 수가 있다는 것. 평소에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전화기지만 좀 더 오래 붙들 수 있는 것.


아침 식사를 거르니 점심을 겸한 브런치가 떠오른다. 한 번쯤 방문하리라 생각했던 곳을 찾아 나서며 제법 눈 쌓인 언덕길을 조심스레 내려가 지하철을 탔다. 명동에 내려 쉽게 식당을 찾았다며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아뿔싸.이미 4개월 전에 경영악화로 그곳은 뷔페로 바뀌었단다. 우리는 플랜 B로 바꾸어 청담동에 있는 곳으로 지하철을 바꾸어 타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30분 전에 호텔 매니저는 어르신들에게 택시를 권했지만 가당치 않은 말이다.


노년의 비밀을 젊은 그가 어찌 알소냐.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한 시간이 충분히 있다는 것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힘없고 지루한 듯하여 안타까운 노년이지만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던가. 젊으나 고단한 시절에 은발의 노인에게 보았던 그 온화함과 여유로움을 얼마나 사모했던가. 신은 우리의 바람을 결코 놓치시지 않으시기에 이제 원하던 자유를 갖게 되었다. 택시로 조금 일찍 도착하면 우리의 아름답고 귀한 식사도 일찍 끝나지 않는가 말이다.이런 것이 궤변인가.


버터핑거팬케익스 청담점이 우리의 브런치 장소다.

남편을 위한 아점이다. 그이는 집에서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팬케이크를 두고 늘 먼 나라에서 만나던 big breakfast에 대한 향수가 있는 듯 싶다.

팬케이크를 굽고 달걀을 올리고 소시지나 베이컨을 곁들인 감자와 내린 커피.

조금 번거롭기는 하나 그 정도는 대민국 아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팬케이크는 아주 좋았다. 부드러운 팬케이크로 올린 시럽도 강하지 않고 다른 곳보다 두꺼운 햄과 사이드로 주문한 클램차우더는 짜지 않아 내 입에 딱 맞았다. 식사하는 동안 우리는 잊고 있던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기억들을 리필된 커피 위로 떠올리며 많이 웃었다.

나는 이곳에서 담소를 나누며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사람들을 보며 연탄 한 장의 귀함을 보여주던 어느날의 영상이 떠올랐다. 세상은 왜 이리도 불공평한가.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고 하던 말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저렴하지는 않은 가격에도 북적거리는 식당을 나오며 잠시 든 생각이다. 나 또한 타인의 어려움에 방관자임을 시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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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근처에 있는 서울의 숲으로 향했다.


바람 부는 그곳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을 다녀간 부지런한 이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눈 옆으로 나의 발을 조심스레 옮기며 바라보는 하늘은 집을 나올 때와는 다른 푸른 빛으로 싸늘한 공기와 잘 어울리는 겨울의 모습이었다.

가슴에 들일 수 있을 만큼 많은 착한 공기를 담고 봄이 되면 다시 찾으리라 생각하며 뒤 돌아 나오려는데 또 다시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치기 시작한다.

이제는 서둘러 집으로 가고 싶다.

악천의 날씨를 뚫고 우리는 오전의 여행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고 돌아왔다. 행복은 만족해하는 그이의 얼굴과 고맙다는 말 위로 봄 나비처럼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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