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장맛비가 내린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출근시간에도 점심 저녁 한 빔 중 기리지 않고 생각도 없이 배려도 없이.
아무 때나 마음대로 적당히가 아니라 마구마구 쏟아진다.
내게 '비모닝'이라며 문자를 보내온 친구의 센스가 돋보이는 날.
아점을 위한 만남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선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익숙지 않은 강남역에서 차와 샌드위치를 나누었다.
먼 거리에서 서로 출발했으나 생각보다 덜 걸린 시간에 대한민국의 교통 시스템을 찬양한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라니~~ 서로에게 괜찮으니 다음 만남의 장소로 결정했다.
나보다 20살이나 어린 여인은 도전의 아이콘이다. 미모와 실력과 예의와 성품 그 어느 것도 빠지지 않는 멋쟁이다. 만나면 늘 역시 젊음과 자유함이 좋다고 생각하며 약간 기가 죽는다. 하지만 열린 가능성으로 본인 자신은 물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꽃을 피우는 모습이 보기에 좋고 응원을 보낸다.
우리는 두툼한 크랜베리 샌드위치를 나누며 눈앞에 닥친 계획된 절식을 위한 마지막 칼로리를 채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재다능한 그녀는 심리 치료사 이기도하다.
그녀는 수업 중에 만나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의 표정 없음과 또래 어린이들이 사소한 일에도 터져 나오는 타인에 대한 분노 섞인 고성을 안타까워한다. 듣는 나도 흥분하고 어처구니없어한다. 꼭 내 손자 손녀들의 모습인 듯싶은 까닭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몇 년째 집에서 은둔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지적 장애인들을 글 마당에 초대하여 치유의 길로 안내하는 길라잡이인 여인. 사회에서 어쩌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 앞에 놓인 안개 자욱한 길에 꽃 한 송이 건네며 희망을 펼치는 그녀.
심리 상담 치유를 하며 만나는 사례들을 들으며 나도 동화되어 의도치 않게 내가 겪은 최근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크고 맑은 눈을 바라보며.
헤어져 돌아오는 길.
장마 전선 위에 걸린 숲이 더욱 짙고 무성하다.
자연의 숲에는 참으로 다양한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늘을 향해 서있다.
우리는 숲에서 쉼을 갖으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심신이 안정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아마도 '피톤치드'의 성분은 인간에게 필요한 사랑과 인내와 배려가 아닌가 싶다
숲 속 가족은 어느 날 홀씨로 날아와 곁에 자리 잡으면 그 순간 식구가 된다. 힘없는 작은 나무가 내리는 비에 몸을 적시고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기다림 속에 돕는다. 그렇게 날이 지나 나이테가 자라며 함께 숲을 이룬다.
그녀는 숲을 이루는 수많은 나무 중에서 미리 뿌리를 내리어 다가오는 작고 휘어진 나무를 기다리며 보듬는 준비된 나무가 아닌가 싶다.
함께 가는 세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멋진 여인이 가까이 있어 참 든든하고 기쁜 장마 속 강남역 데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