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노바

by 김인영


너에게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길도 사실은 너를 향한 길이었다.

나희덕 <푸른 밤>에서


끝나지 않은 코로나의 터널 속에서, 나는 탈출을 꿈꾸었다. 찔레가 담장을 뒤덮은 날, 영국 북쪽으로 떠나는 여행권이 도착했다. 셸리와 워즈워스가 극찬한 호수의 고장에서 하늘 가득 흩어진 별을 보았다. 나는 몇 안 되는 관객들 사이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갈등, 사랑을 향한 여행을 떠났다. 두 시간이 흐르고, 가슴에 울림을 품은 채 무사히 원위치로 돌아왔다.

별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시인은 별까지는 가야 한다고 했고, 별을 바라보던 화가는 “우리는 지구에서 기차를 타듯,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말하려는 것은 별의 이야기가 아니다. 별로 돌아간 한 인간의 삶, 친구와 우정,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영화 이야기다.

그것은 사랑의 이야기였다. 서로에게 전부였던 두 남자, 작가 샘(콜린 퍼스)과 피아니스트 터스키(스탠리 투치). 하루가 다르게 기억을 잃어가는 한 사람과 그 곁을 지키는 또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함께 여행을 떠나며 그 길이 곧 이별을 향한 여정임을 알고 있었다. 세상의 편견 속에서 외롭고 긴 어둠의 시간을 견뎌온 두 사람, 그들의 확고한 신뢰와 사랑은 작별의 순간조차 따스하게 감싸안았다.

사랑하는 이웃과 친구들이 마련한 작은 환송 파티, 그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지만 누구도 어두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가벼운 농담이 오가고, 그들은 마치 내일 다시 만날 듯 웃으며 헤어졌다.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의지로 맞이하려는 터 스키의 결정, 그 앞에서 샘이 오열하던 모습은 오래도록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는 좀 더 많이 남아있을 기억을 간직한 채,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남겨진 연인은 이미 별이 된 사랑을 기억하며 피아노를 연주한다. 죽음 보다도 함께한 시간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듯.


영화는 그렇게 고요히 끝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오래 전 한 친구가 떠올랐다. 가족 같고 언니 같던 사람. 나이가 들면 모두를 떠나더라도 함께 손잡고 의좋게 살아가리라 믿었던 그녀였다. 그러나 나는 큰 실수를 했다. 그녀의 아들이 동성애적 성향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에 바람결에 들었지만, 그녀가 먼저 꺼내기 전에는 모른 척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세월이 흘러, 나의 배려 담긴 침묵이 그녀에게 상처였음을 알았을 때 이미 우리는 멀어져 있었다. 누구보다 성실히 베풀고 웃음을 잃지 않던 그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그것이 마음 아프다. 사랑하는 아들이 ‘다른 사랑’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우리 사이에 벽이 생겼다. 감히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동성 간의 사랑을 ‘순리에서 벗어난 일’이라 말한다. 죄라 단정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들을 ‘치유’해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야 할까.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돌아오는 길 내내 봄비가 내렸다. 흐릿한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수퍼노바’를 생각했다.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무수한 별들도 생명을 가진다. 별이 죽음을 맞는 순간, 그 마지막 폭발의 에너지는 새로운 별의 씨앗이 된다. 이를 ‘수퍼노바’라 부른다. 죽음으로 모든 의미가 사라지는 듯한 그 순간, 오히려 새로운 우주의 탄생이 시작된다. 한 사람의 죽음도, 어쩌면 그런 의미의 전환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밤, 다시 별을 보게 된다면 나는 오래 묻어둔 그리움의 보따리를 풀어 한바탕 울고 싶다. 영원한 작별은 없다. 별은 수퍼노바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한때 함께 걸었던 사람들은 그 별빛이 되어 우리 곁을 맴돈다. 모든 사랑은 귀하고 아름답다. 그것이 아픔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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