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고 싶다.
“오세요. 어서 와요. 헐고 낡은 것은 버릴 테니, 새것만 오세요.”
하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싶지 않고, 헌것도 그대로 지니고 싶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시간이라는 녀석은 자꾸만 달아나며, 마치 당연하다는 얼굴로 내 앞에 선다. 어쩌겠는가. 2025년을 사흘 남긴 날이다.
이제 또 한 살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시리다. 아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며, 전과 달리 숫자에 유난히 민감해진다. 이것이 나이 듦의 징후일까.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해 왔다. 앞만 보고 가자고, 지금 이 순간을 아쉬움 없이 살아가면 미래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오늘의 결과물이 내일의 나를 대신해 줄 것이라고.
그러나 익숙했던 이름의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은 쉽게 위로받지 못했다. 아무리 무성하고 푸름을 자랑하던 여름의 나무도 결국은 잎을 떨구어야 봄의 꽃을 피운다지만, 그 이치만으로는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몸은 뻐근하고, 기침은 오래 남는다. 눈이 쉽게 피로해져 책 읽는 시간도 짧아졌고, 밤에는 노래를 목청껏 부르지 못한다. 다리는 무겁고, 손마디는 굵어졌다. 기억력도 슬그머니 동참해, 지난 일주일의 일을 더듬어 떠올리게 한다.
식사 준비도 간소해진다. 되도록 정결하게, 그러나 쉽고 빠르게. 나이가 들면 소식이 좋다던 말을 핑계 삼아 게으름과 화해한다. 무력감은 결국 에너지의 고갈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나이 드는 것이 싫다. 이대로 허물어지는 것도 싫다. 모든 생명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약해지는 것이 만고의 진리일 텐데, 평생 그림자처럼 함께해 온 나이 듦이 일흔 하나의 고개를 넘는 이 시점에서 유독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앞으로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숫자의 더하기가 아닌, 인생의 성장을 위하여. 밤으로 가는 열차는 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나보다 앞서 걸어간 이들의 말을 조심스레 모아본다.
나이 듦은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 지혜와 여유를 키우고, 관계를 재정립하는 전환의 시기라는 말. 나이 듦을 부정할수록 더 힘들어지니, 몸의 변화를 존중하고 비교 대신 감사와 경험을 나누라는 조언.
생활은 단정하게 가꾸어야 한다. 마음의 건강을 살피고, 취미를 확장하며, 관계의 질을 높일 것.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여행으로 익숙함의 껍질을 벗겨낼 것.
관계 또한 넓이보다 깊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수의 진실한 관계가 삶을 지탱한다. 형식보다 진심, 가지치기할 용기, 함께 즐길 동반자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노년의 지루함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새로운 흥밋거리를 발견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학자들은 말한다.
“당신의 나이는 당신을 가두는 틀인가요,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인가요?”
나이 듦은 멈춤이 아니라, 나이를 기회로 삼는 전환이라고. 다른 방식의 성장이라고. 경쟁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 자신이라고.
이제 나는 나이를 묻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더 가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걷는지를 생각하려 한다. 느려진 걸음에는 이유가 있고, 멈춘 자리에도 뜻이 있다. 앞서간 이들의 말은 길이 아니라 등불이 된다. 나는 그 불빛을 한 손에 들고, 나에게 맞는 속도로 밤을 건너갈 것이다.
밤으로 가는 열차는 타지 않는다. 아직 나에게는, 새벽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