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여린 사람

by 김인영


『아버지의 금시계』라는 글을 읽었다.

작가의 아버지가 어쩐지 나와 닮은 성향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길거리에서 누가 봐도 싸구려 도금이 분명한 번쩍이는 시계를, 수분이 빠져 쭈글거리는 손목 위에 얹고는 십만 원이 넘는 것을 마음 좋은 상인 덕에 삼만 원에 샀다며 연신 싱글거리는 아버지.

곧 드러날 진실이 눈에 보이는데도, 그 환한 얼굴을 보며 딸은 말하지 못한다. 그 실수 뒤에 따라왔을 지난 인생의 실패들까지 떠올리며 마음속으로만 한숨을 삼킨다.

술 한잔에 보증을 서고, 친구들에게 번번이 ‘봉’이 되고, 여전히 사람을 믿는 철없는 아버지.

안타까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사람을 믿는다는 것.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랬을 거야. 아마 이유가 있었겠지.”

자책은 해도 원망은 하지 않는 사람.

특별히 너그러운 것도, 그렇다고 남보다 모자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인생의 길을 걷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나도 그쪽에 속하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많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 오면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고, 종일 바다와 산의 고요가 벗이 되어 곁에 앉는다.

주변에 그 흔한 편의점도 없고, 아프면 달려가 약을 살 약국도 없다. 좋아하는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 하나 쉽게 살 수 없는 곳. 그런데도 좋다.

이곳은 영종도다.


무엇보다 어린 손자들이 우리가 이곳에 있다고 하면 신나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도 괜히 재벌 집 노부부라도 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함께 웃는다.

지난 여름 놀이터에서 올려다보던 별빛이 어린 가슴에 남았을까.

하늘을 가르던 비행기였을까, 바닷가 모래밭이었을까.

무엇이 그 아이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오는지 알 수 없지만, 함께 나누었던 시간은 분명히 아이들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의 자리에 안착하기까지 길은 순탄치 않았다. 약속된 입주 날짜를 훨씬 넘긴, 꼬박 여섯 해의 기다림이 있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다.

쉽게 내린 결정, 세상 물정 모르는 무모함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었다.

우리 부부는, 참으로 더불어 용감했다.

기다림에 대하여.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하여.


세상에는 귀가 얇아 일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고, 그 곁에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다.

가짜 금시계를 손목에 얹고도 잠시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고,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치 않는 무언가를 붙들고 사는 사람도 있다.


속고 또 속아주며 살아가는 삶.

수천 년 전 떠오르던 태양은 오늘도 떠오르고, 다시 저물 준비를 한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순간의 온기뿐인지도 모른다.

지금 좋으면 되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을 누가 알겠는가.


며칠 후 이곳을 찾을 벗들을 위해 찻잔을 닦아 놓으려 한다.

기다림 끝에 얻은 이 작은 집에서,

오늘의 햇볕만은 따뜻하게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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