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남미에게)
겨울비 내리는 새벽이다.
맑지 않은 머리로 일어나 몸을 푼 후 메일을 체크하고 커피를 내린다. 간밤에 꿈을 꿨다. 나는 여행 중이었으며 한 무리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뒤편에서 따라붙는 악당들이 있었다. 타지에서 위기의식을 느끼었으니 그들은 악당이라 표현함이 맞다. 마구 달렸다. 나는 기념품으로 샀던 작고 파란 아주 멋진 색의 물병을 목에 걸고 뛰고 또 뛰었다, 남편은 그 와중에서도 많은 책을 집어 들며 같이 뛰었다.
함께 웃던 친구들은 다 흩어지고 지구 반대편에서 난 아득함과 두려움에 떨었다.
진정되지 않은 가슴으로 눈을 떴다. 아직 선명한 색깔로 기억에 남아있는 물병을 찾아 목을 쓸어 보았다. 푸른 하늘빛 남색이었다.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아직 가보진 못했어도 왠지 친숙한 그곳은 남미이다.
사라진 잉카문명이 늘 궁금했다.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가 궁금했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리오 데 자네이로의 거대한 예수상을 꼭 보고 싶었다.
그 아름다운 휴양의 도시의 노천카페에 앉아 여행자의 여유와 게으름을 만끽하며 한 잔의 맥주를 꼭 마셔 보고 싶었다. 아마존의 정글을 카누를 타고 지나쳐 보고 싶기도 했다. 영화 미션에 나오는 이과수 폭포도 궁금했다. 그곳에 걸린 무지개가 보고 싶었다.
그 모든 열망을 합치면 늘 색깔로 떠오르곤 했다. 아무런 가감이 없는 선명한 원색이었다. 나는 어릴 적 가난하고 모든 상황이 부족하고 어려웠을 우리 조상들이 백의민족이라는 것이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잠시 있었다. 어느 민족이라고 순박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마찬가지로 늘 옥수수만 캐는 것 같은 그들,
척박한 환경에서 짚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아기를 등에 업은 채 선명한 색의 옷을 입고 있는 그들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여전히 달라진 것 없이 그들은 어려운 처지지만 남미의 열정적인 축제를 알게 된 후 그것은 태양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곤 그곳을 동경해왔다. 춤과 리듬이 일상인 그들의 열정을 마음에 담고 삼바와 코파카바나를 그리워했다.
가끔씩 내속에 감춰진 바람이 느껴질 때 오직 한번뿐인 삶에 대한 나의 열정 없음에 좌절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남색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색이다. 하늘이지만 하늘이 아닌 색이고 바다색이지만 바다가 아닌 색이다. 그것은 자유이다. 내가 갈망하는 것. 꿈꾸는 내 모습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갖지 못한 자유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체험이지만 꿈에서나마 파란색으로 먼저 손을 내민 남미가 고맙다. 그리고 언젠가 꿈을 실현할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미래가 있음에 감사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