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우는 마을
그리운 이여 어젯밤 무섭게 쏟아진 비로 세상이 맑게 보이는 오늘입니다.
여름의 문턱에 다가온 6월이지요.
세상에 변한 것이 하도 많아 여름도 미리 오고, 젊은이들은 덜 예의 바른 것 같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몫만 챙기는 것 같고, 연필로 마음을 전하려 찾던 종이는 이미 기계에 준비되어있고, 옷도 구두도 색깔 별로 맞추어 준비해야 센스 있는 여인이 되고, 남성도 미백에 에센스에 심지어 커플로 피부 관리를 해준다는 광고도 보고 음식도 퓨전이고, 다문화 가정이 많이 생기고, 남보다 돋보이려 애쓰는데 모두가 비슷비슷하고, 누구나 공들이니, 웬만해선 뛰어 날 수가 없고,
마음을 비우라 하는데 여유로움은 뒤떨어짐이 아니던가요?
우리는 분명 전보다 나은 사회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그리 되었음이 분명한데 왠지 허전하고 때때로
이질감도 느끼게 되는 것 저만의 생각일까요?
며칠 전 그대가 계시는 그곳까지는 갈 수 없기에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잠시 나들이를 다녀왔지요. 전에는 지도를 보고 놓치고 돌아가고 하던 기억도 있건만
입력해놓은 장소를 잘도 찾아 인도해주던 기계가 신기하고, 간간이 음악과 티브이도 보며 우리 가족은 참 행복했지요. 묶을 곳도 미리 컴퓨터로 보았는지라
언덕에 자리한 펜션은 낯설지 않아 좋았지요.
분명 우리는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기는 합니다.
만지지 않고도 정 들일수 있고, 직접 보지 않고도 충분히 익숙해질 수도 있고요.
그날 저녁 안개 비처럼 내리는 고요함이 너무 좋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지만 추운 줄 몰랐답니다.
몇 년 전 그대와 함께 갔던 ‘몬트레이’의 ‘빅 서’를 가슴에 품은지라 바닷속으로 몸을 감추는 일몰의 황홀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는데 짙은 안개 탓에 서운함을 접을 수밖에요
바람에 밀려간 바닷물에 덕분애 황혼이 머무는 시간에 멀리 나가 바닷속 여행도 해보았지요
이른 새벽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숲에서 한없이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와 함께 마시던 쓰고 달며 구수한
커피의 향내가 아직도 저를 자극하는 듯싶군요.
나무 바닥에 닿던 서늘한 맨발의 촉감도 아직 살아있고요.
우리 그렇게 살면 안 되나요?
바닷가 한적한 곳에서 새도 들이고, 꽃도 벗하며
천천히, 마음을 열고, 추워도 서둘러 따스함을 구하지 않고,
견디고 인내 속에 배려를 배우며, 쓴 것을 통해서 단맛을 알게 되고, 때론 나보다 남을 귀하게도 여기며
더 갖기보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덜 분노하고, 조금만 걱정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인생의 보다 더 값지고 아름다운 풍성한 열매를
꿈꾸며 살면 안 될까요?
서둘러 오는 여름을 맞을 자신이 아직 서질 않아 이렇게
슬로 시티와 뻐꾸기 울음 소리를 그리워하며 그대에게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장마도 오고 장미도 곧 지겠지만 그대 있음에 행복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