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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r 06. 2023

찌그러진 내 얼굴.

한쪽눈은 너무도 시립니다. 눈이 감기질 않거든요.

여기저기 병원을 돌다 결국 침을 맞는 한방병원에 입원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길 수 있고, 밤낮이 바뀌는 육아로 피로가 쌓여 그럴 수 있다는 소견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전자가 이유이지 싶습니다. 만삭 때부터 지금껏 온전한 내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으니까요.


매일 하루 두 번씩 오른쪽 얼굴과 팔, 다리에 침을 맞습니다. 한방 스팀도 쐬어주고 적외선 치료도 하고

한약도 먹습니다. 입원해 첫 주동안은 입이 움직이지 않아 빨대로 물을 마셨습니다.

잠을 잘 때도 오른쪽눈은 감기지 않아 안약을 넣으며 지내야 했습니다.

입이 불편한 탓에 음식도 제대로 먹질 못합니다.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5킬로가 빠졌습니다.

출산한 지 5개월쯤인 저는 아직 모유수유 중이었습니다. 아이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으니

젖몸살로 고생을 했습니다. 결국에 선생님에 말씀을 드려 젖 말리는 한약을 처방받아 일주일 동안 먹었습니다.


결혼식장과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어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어 예약일을 미뤄달라고 전화를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한 달 뒤로 진행이 가능해 일정을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었으니 그간의 일을 엄마에게 털어놨습니다.

이 사람이 다른 여자도 만나고 도박빚 갚으라는 전화도 받고 있었다고..


엄마는 내게 모진 말들을 쏟아냅니다.


"이참에 잘 됐다. 결혼식도 다 취소하고 애도 시댁에 줘버리고 다 무르자! 너 나이도 어린데 새 출발 할 수 있어. 고생길로 들어갈 생각 말고 다 때려치워!!"


아니요. 저는 그리 못합니다. 결혼식은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포기할 순 없습니다.

그 집에 두고 온다면 전 늘 가슴에 바위를 얹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사람처럼 성장할 내 아이가 안쓰러워 그렇게는 못합니다.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내진 못해도, 적어도 아빠처럼 크는 아들을 볼 자신은 없습니다.

내가 낳은 내 아들입니다. 내가 잘 키워야 합니다. 나 편히 살자고 열악한 환경에 아이를 두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엄마가 다녀가신 후 내 아이가  너무도 보고 싶은 그런 밤입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 태어났었다면 외할머니께서 그런 모진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요.. 나 때문에 우리 아들을 짐으로 만들 어린 못난 엄마는 한없이 미안합니다.



병원에 있던 동안 남편은 한 번도 오질 않았습니다. 딱 한번 아들이 보고 싶단 나의 연락에 아이와 왔던 적이 다입니다. 그 외에는 몸은 괜찮은지 지낼 만은 한지 필요한 건 없는지 그런 사소한 연락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내 명의로 휴대폰을 쓰고 있었습니다. 외도한 전적이 있어 나는 남편 몰래 인터넷에 문자가 저장되도록 조치를 취해놨었습니다.(지금은 개인정보보호로 절대 할 수 없는 서비스였습니다.)

나는 또 한 번의 판도라의 상자를 엽니다. 그럴걸 알면서도 억지로 외면하며 행동하지 않은 일.

저장된 문자들을 인터넷에 접속해 열어보게 됩니다. 아직도 그 여자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남편.

아픈 나에게 밥은 먹었냐는 문자 한 통이 없으면서. 그 여자에겐 밥은 먹었는지 식후 커피는 마셨는지 별 시답잖은 연락을 참 많이도 주고받았더군요.

내가 병원에 왜 입원해 있는지 그 원인이 본인임을 알면서도 행복하게 그 여자와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내면서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상은 했었어도 충격은 역시나 큽니다. 내가 불쌍해서 서럽고 슬프고 이런 남자에게 내 모든 걸 맡겨버린 나의 어리석음에 화가 나 서럽고 슬픕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날 때쯤 퇴원을 결심합니다.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 날이 하루도 편치 않았습니다.

계속 이 병원에 처박혀 있다 보면 정신도 온전치 못할 것 같았습니다.


퇴원절차를 위해 원무과에 갔습니다.

입원치료비 정산을 위해 금액이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한 달간 입원치료비는 150만 원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전화했습니다.


"나 퇴원하고 싶어. 원무과 정산해 봤더니 병원비 150만 원이래. 치료도 대충된 것 같고 집에 가고 싶으니까 병원비 마련해서 퇴원시키러 와."

"알겠어. 알아보고 연락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러고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제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다시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하는 수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서러움에 울음이 터집니다. 단단히 화가 나신 엄마는 시어른께 연락을 하겠다며 기다리고 있으라 하십니다. 


그날 오후 시부모님은 손자인 내 아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오셨습니다. 제가 입원해 있는 동안 손주를 돌봐오셨습니다. 


"고생 많았지. 어서 가자."

이제 며느리가 퇴원했으니 더 이상 손주를 봐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엿보였습니다.


일단은 친정으로 가고 싶다 말씀드리고 저희 집으로 향했습니다.


친정에 도착하니. 우려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화가 나신 친정엄마는 이 결혼은 없던 일로 하자. 손주는 그 집자식이니 책임지시고 데려가라고 노발대발하십니다. 나는 불쌍한 내 딸만 챙기고 지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일부러 엄마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간 겪은 마음고생에 비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아들과 방으로 들어가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옆에서 아빠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자며 언성을 낮추고 이야기하자며 엄마를 말리십니다.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들만 주고받으시다 시부모님은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나에게 말하십니다.

"다 없던 일 할 거면 아이는 시댁에 보내. 난 네가 혼자 애 키우며 사는 꼴은 못 보겠으니까."


전... 어찌해야 좋을까요..


내 아기가 아직 어려 외할머니의 저 말들을 모두 기억을 못 하니 참 다행입니다.

내 아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성치 못한 부모를 만난 것이 죄라면 죄겠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나는 몇일 뒤 나의 집으로 아이와 돌아갑니다.

그때의 난 어떤것이 현명한 것인지 감히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저 아이와는 떨어질수없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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