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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r 05. 2023

결혼이 돌파구가 될 순 없습니다.

남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지 마세요. 내 삶에 주체가 되세요.

24살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나에게 무척이나 잘해주던 그에게 전 홀딱 빠졌습니다.

취업도 어렵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챙기며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단.. 안일한 생각에 결혼을 결심합니다. 늘 돈이 없는 우리 집이 싫었고, 마음처럼 되는 일도 없다 느낀 나는 도피결혼처럼 정답 없는 이 생활을 끝내고 싶단 생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내 아이가 뱃속에 생겼거든요.. 곧 엄마가 될 준비를 하여야 했습니다.

내 기억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시간이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단 것은 절대 잊히지 않지만...


체면을 중시하시는 아빠를 볼 용기가 없어.. 임신사실을 계속 숨겼습니다.

5개월이 넘어가도록 집에는 티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전 체구도 작고 마른 몸이라 임신한 것이 티도 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될 사람과 양쪽집에 인사를 가기로 했습니다.

시부모님이 되실 분들을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습니다.

전 죄를 지은사람처럼 시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임신 5개월째인데 말이죠..


"이 사람 임신을 해서 우린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희들 뭐 먹고살려고 그러니?"

"뭐라도 하면 돈 벌겠지. 너무 걱정 마세요."


1시간가량을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가 시부모님의 걱정들과 잔소리들을 들으며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다리를 주무르며 집 밖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시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네가 불쌍해서 그런다. 나이도 24살이면 아직 어린데 일찍 결혼해서 고생하며 살게 뻔히 보여서 그래."


맞는 말씀이긴 하나, 이제 어떻게 되돌려야 될까요.. 결혼을 없던 일로 하면.. 나는.. 내 아이는 어쩌란 말씀이실까요..

우리 집에서는 의외로 담담히 받아들이셨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알고 딸의 선택을 지지해 줄밖에요.. 이미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갑작스러운 결혼을 준비해야 하니 우리는 결혼식은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드레스는 입고 싶지 않았고(아빠가 절대 싫어하셨을 겁니다. 동네창피하다며..) 여건도 그렇게  몇 달 안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긴 힘들었습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정말 없구나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 사람 번듯한 직장이 없었습니다. 늘 쓸 돈은 부족함이 없었고 무엇인가 하는 일이 있으니 차도 타고 다니는 게 가능하다 싶었고.. 무엇보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저의 잘못이겠지요. 그저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고.. 주변엔 한의사친구도 있었고.. 지금은 잠깐 일을 쉬어도 곧 직장을 잡아 건사하겠지란 안일한 착각 속에 희망을 걸었었습니다. 이 사람..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도 직장을 구 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출산준비도 차차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대리운전사무실을 인수받아 보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기사님 수당을 주고 본인은 얼마를 가져올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나에게 어필을 합니다.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기존에 운영하던 곳이라 고객층도 어느 정도는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수 자금이 문제였습니다. 2천만 원이면 인수가 가능하다지만 제가 무슨 돈이 있나요..

하는 수없이 친정집으로 가 우리 부모님께 상의를 드렸습니다.

모든 장부들을 검토하고 상환계획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한 뒤 우리 아버지가 2천만 원을 빌려주셨습니다.

1년 이내 상황에 맞게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이제 곧 애도 태어날 텐데 백수사위가 머라도 해 먹고살으란 뜻이셨을 겁니다.


사무실 인수 후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매일매일 10만 원 20만 원 저에게 벌어다 줬습니다. 다만 밤에 하는 직업이 걸리긴 했지만 지금 우리에겐 찬밥 더운밥을 고를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임신 8개월 무렵 이 사람의 낌새가 좋지 않습니다.

새벽 4시쯤이면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데 아침까지 오질 않더군요. 꼬리는 금방 밟혔습니다.

사무실에 나오는 여자 기사와 바람이 났습니다.

사실과 직면하던 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습니다. 남편을 불러놓고 추궁을 합니다.

울며불며 이야길 했습니다. 체구가 작은 만삭의 나는 너무 가여웠습니다.

남편은 이야기합니다. 깊은 사이 아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다 정리할 거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


용서 말고는 제게 방법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용서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25살. 나의 첫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첫 출산에 어리둥절하여 신기한 경험이다라고만 생각이 들었지. 감사하다 사랑스럽다 감격스럽다의 기분은 솔직히 아니었습니다.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여유 있는 삶이 그때는 아니었으니까요. 바람난 남편을 용서한다고 지난날의 기억이 지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의 그 기억이 늘 내 머릿속 한 곳에는 각인되어 있습니다. 각인된 그 자리엔 상상력이 더해져 둘은 무엇을 했을까도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욱하여 또 남편에게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전 남편에게 정신병자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의부증 때문에 살 수가 없겠다는 말들도 들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결혼식을 안 한 터라 출산뒤 몸조리를 끝내고 양가 어른들은 결혼식을 차차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논을 시작하셨습니다. 몇 달 뒤 결혼식을 할 요량으로 결혼식장을 예약한 뒤 스튜디오 촬영도 예약을 해놓았습니다.


남편의 사무실은 사업이 잘 되는 듯했습니다. 친정아버지께 빌린 2천만 원의 큰돈도 결혼식 전에 모두 갚았습니다. 어린 나의 아들과 친정집을 오가며 지냈습니다. 새벽에 귀가하는 남편이라 밤시간 혼자 지내는 것이 싫어서 거의 친정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날도 친정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제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000(남편) 선배예요~"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이게 제수씨한테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도 답답해서 연락했습니다."

"네..."

"얼마 전부터 00 사무실에서 재미 삼아 포카를 쳤는데 게임비를 빌려가서 갚지 않네요.. 나도 여유 있는 놈이 아니라 그 돈 없으면 힘들거든요.. 미안하지만 제수씨가 어떻게 생각 좀 해줘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보고 갚아달란 말씀이세요?"

"이 새끼 전화도 안 받고 피해 다니는 통에 저도 어쩔 수 없이 제수씨한테 연락한 겁니다."

"네. 일단 알겠습니다."


바람피운 것도 모자라 이번엔 도박 빚입니다.

금액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2~3백만 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도 선배의 전화가 오고.. 저도 돈이 없어 알아보고 있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시달립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갔습니다.

컵에 물을 따라 입에 대고 마시는데.. 입옆으로 주르륵 물이 흘러내립니다.

방금 일어난 터라 근육들이 아직 깨지 않았나 싶어 손으로 양 볼을 어루만진 뒤 다시 물을 마셨습니다.

다시 또 주르륵 물이 흘러내립니다.

화장실로가 거울을 봤습니다. 왼쪽 얼굴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에 얼굴에 안면마비가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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