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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r 05. 2023

나는 고3 2학기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받는 월급은 200만 원이 훌쩍 넘는 큰돈입니다.

나는 취업을 나갔습니다. 나쁘지 않은 회사라 무엇보다 부모님도 반기셨던 듯합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니 저도 좋습니다. 아직 학생의 신분으로 취업이 되었기 때문에

입문교육을 받는 기간은 정말 즐겁게 지냈습니다.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고 동기생들과 마치 수학여행을 온듯한 느낌으로 나의 첫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언니들의 우려와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전 잘 적응했습니다. 좋은 동기생들과 재미나게 지냈으며 몇 달의 입문교육과정이 끝나고 현장에 배치되어 만난 선배님들도 너무도 좋았습니다.

지금은 그 회사를 퇴사한 지 18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냅니다. 1년에 한 번은 꼭 만나서 밥을 먹기도 합니다. 아직도 몸과 마음이 힘들 때면 나는 나의 첫 직장에 다시 입사하는 꿈을 꿉니다.

그때의 내가 가장 편안하고 걱정이 없던 때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3교대 근무를 하는 나의 급여는 한 달 260만 원 정도가 됩니다.

휴대폰 요금을 포함한 나의 용돈 30만 원을 제외하고 엄마에게 송금을 합니다.

우리 집은 아직도 여유롭지 못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었고, 장학금을 받긴 해도 용돈이 부족한 둘째 언니도 있습니다. 내가 한 달을 일해 버는 돈은 우리 집의 생활비로도 언니의 용돈으로도 쓰이니 정말 다행인 일입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둘째 언니가 방학을 해서 집에 온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나의 월급날이기도 했습니다. 내 용돈 25만 원 중 5만 원을 언니에게 용돈으로 준 날입니다. 대학생은 늘 가난하니 돈 버는 동생이 인심을 쓴 겁니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옷을 사 입기엔 나의 용돈도 적습니다. 언니에게 5만 원을 내어주면 그 달은 친구를 한 번 덜 만나면 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나는 다음 달에도 월급을 받고, 이달에 못 만난 친구를 다음 달에 보면 될 일이니까요.


취업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예대를 가고 싶어서기도 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 모으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니 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예대를 위해서는 좋은 악기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용돈 30만 원 중 10만 원은 엄마 모르게 적금을 넣습니다. 언젠간 사야 될지 모를 내 악기를 위해서 돈을 모읍니다. 보너스를 받는 달에는 조금 더 저축을 하기도 했습니다. 버스로 40분가량 떨어진 지역으로 레슨도 받으러 다녔습니다. 일주일에 2번가는 개인레슨 비용은 15만 원이었습니다. 레슨을 받겠단 이야길 엄마에게 드린 후 내 급여에서 레슨비를 지불합니다. 여러 달이 지난 뒤 강사선생님과 저는 진지한 이야기를 합니다.

레슨을 받는 이유를 물어보십니다. 대학을 가고 싶다 말했습니다.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키우고 내가 일해서 모은 돈으로 가능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대를 진학하기엔 나의 짧은 계산은 맞지 않았는지 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신 강사선생님께서 어머니와 진로상담전화를 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가야금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1년 정도 레슨을 받으면 예대진학도 가능해 보이는데 어머님 생각은 어떠신가 하여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그런가요.. 그렇지만 우린 자식들도 많고 아직 어린 동생도 있습니다. 일반 대학을 가는 것도 우리에겐 좀 부담인데... 예대를 진학한다는 것은 더 큰 부담이 되어서요.. 자기가 벌어서 모은 돈으로 간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어머니."


많고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내 꿈은 나의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생각을 정리한 뒤 강사선생님께 전화드려 더 이상 레슨이 어렵겠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척이나 아쉬워하셨지만 지금에 나에게는 취미반으로 쓸 레슨비는 없습니다. 그렇게 나의 긴 바람은 그날로 끝이 났습니다. 나에게 남은 건 조금씩 모아 놓았던 적금을 깨서 구입한 마음에 쏙 드는 중고 악기뿐입니다. 100만 원가량의 큰돈을 주고 구입한 내 악기. 나의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다음생이 있다면 그때라도 이루고자 하는 나의 꿈이지만.. 이번생에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나에게 많은 추억이 깃들어있는 그 악기도 나이 들어감에 색도 바라고 현도 헐거워졌지만

나의 그 옛날의 못 이룬 꿈을 온전히 담고 있는 나에겐 친구 같고 보물 같은 그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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