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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r 06. 2023

세상사람들이 모두 날 불쌍한 여자로 보는 것 같습니다.

나도 아는 불쌍한 내 인생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듯합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안 남편의 사무실은 불 보듯 뻔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도박장으로 변질된 사무실에는 성실히 일하시던 대리기사님들이 하나둘 떠나갑니다.

일을 할 기사님도 없게 되니 손님들도 하나둘 떠나갑니다.

결국 남편은 실업자가 됩니다. 병원에 있던 터라 도박빚의 선배의 연락도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그 채무관계는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궁금하지도 않아 묻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렸습니다.


아직 분유를 먹고 있는 아이, 매달 써야 하는 기저귀값도 없습니다.

시댁에서 일주일에 10만 원씩 주십니다. 분유값과 기저귀값으로 말입니다.

적당한 분유와 최저가의 기저귀를 구입합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조금 더 저렴합니다.

기특하고 대견한 나의 아들은 어느 기저귀를 써도 발진한번 없이 잘 지내줍니다.

3만 원씩은 따로 통장에 모아놓습니다. 비상시에 쓸 요량으로 최대한 모아둡니다.

친정과 시댁이 근처라 웬만한 반찬은 큰 걱정이 없습니다. 내입으로 좋은 음식이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먹을 분유가 있고 기저귀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나는 엄마이니까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죄송해 용돈도 직접 벌었던 나입니다.

시댁에서 주시는 1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것이 죄송하기도 하고 무능한 인간이 된 듯하여 맘이 편치 않습니다.


얼마 전 유모차를 끌고 15분 거리의 재래시장을 다녀오던 길입니다.

내 옆으로 검은색 승용차가 정차를 합니다.


"제수씨. 시장 다녀오시나 봐요~"

"안녕하세요.. 누구..."

"나 00 선배예요. 일전에 본 적 있는데 기억이 안나시나 보네요.. 가는 길이니까 태워다 드릴게요~애기랑 타세요~ 언제 걸어서 가요~"(다행히 그전 도박빚 선배는 아닙니다.)

"아니에요.. 감사한 데 가다 들를 곳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처음 보는 남자의 차를 타기란 무서운 일이기도 합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흔한 일이지만..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대인기피증이 생겨버렸습니다.

생전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나를 알아본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어찌 살고 있는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만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지나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속마음이 환청으로 귓가에 들립니다.


'저 여자야.. 남편은 매일 바람피우고 도박빚에.. 애기 분유값도 없이 산대'

'나이도 어린데 어찌 그리 산대.. 불쌍하다.. 쯧쯧쯧..'

'병원입원도 하고 남편이 퇴원할 때 코빼기도 안 비췄다더라~"


25살의 꽃다운 나이의 한 여자. 일생 중 가장 아름답게 사는 때인데

나는 혹여나 누가 날 알아볼까 사람이 없는 길만 찾아 멀리 돌아서 집으로 갑니다.

아이와 놀이터에 나와 놀다가도 다른 사람이 오면 아이를 챙겨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갑니다.

집 앞의 슈퍼도. 가격이 착한 재래시장도 저는 더 이상 가질 못합니다.

불쌍한 듯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의 나의 생활을 다 알고 있는 양 불편함으로만 다가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중장비면허를 따보겠다고 말을 합니다.

아는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이라 학원비 50%를 깎아줄 테니 50만 원이면 수강이 가능하단 거였습니다.

한 달의 시간이면 충분히 면허를 취득하고 친구 아버지의 회사에 지입기사로 취직도 가능하다 했습니다.

무어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 그렇게라도 해야겠다 싶어 3만 원씩 모아놓은 30만 원을 남편에게 건넸습니다.


"내가 가진 게 이게 전부야.. 나머지는 어떻게 해?"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구해볼게. 그거면 충분해."



네... 전 남편에게 또 사기를 당했습니다. 학원은 등록도 안 했고 내가 10주간 모은 30만 원은 하루 만에 모두 써버렸습니다. 당구장값으로 게임방값으로 쓰고.. 그동안 친구들에게 얻어먹고 다녀 미안한 마음에 술도 한잔 대접하고 온 남에게만 아주 아주 착한 남편입니다.



이전 13화 찌그러진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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