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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r 07. 2023

저는 나의 집보다 회사가 좋습니다.

퇴근시간이 오는 게 두려워요

이 세상 모든 직장인이면 퇴근시간을 늘 기다리겠지만, 전 좀 달랐습니다.

퇴근 후 아이와의 재회는 너무도 기쁘고 좋지만.. 집에 돌아가면 펼쳐져 있을 광경이 눈앞에 선하거든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귀가를 합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저기 저 웬수가 내가 출근 한 뒤 술을 먹고 귀가를 했을 겁니다.

퇴근해 돌아오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배고프다 밥 먹자" 하며 씻으러 욕실로 들어갑니다.

나는 우선 아이옷만 편한 옷으로 탈의 한 뒤, 내 옷은 출근 때 입었던 그 옷을 고대로 입고 저녁을 준비합니다.

밥상이 다 차려지면 귀신같이 알고 욕실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채 먹기도 전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운남편은 옷을 챙겨 입고 나가버립니다.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게 속이 편할 때도 있습니다.

집에 계속 같이 있어봐야 감정이 욱해진 나는 잔소리를 퍼부을 테고, 그러면 또 아이 앞에서 싸워야 합니다.

싸움이 격해지면 살림살이도 부숴버리는 남편이라 어찌 보면 큰 싸움을 안 만드는 것이 평온하기도 합니다.


남편도 가끔 일은 했던 거 같습니다. 길어야 3개월이라 나의 기억엔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요. 5개월 놀다 3개월 취직했다가, 또다시 백수로 3개월을 보내다 1개월 취직을 했다가.. 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니 내 기억엔 백수로 지낸 남편의 기억이 더 많습니다.



나의 가장 생활이 2년쯤 돼 가고 있을 무렵 시아버지께서 남편의 일자리를 알아봐 주셨습니다.

그간 차도 없이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고차라도 하나 사라시며 천만 원의 큰 금액도 주셨습니다.

남편은 우리 형편에 덜컥 새 차를 계약했습니다. 본인도 취직을 했겠다 매달 나오는 할부금은 본인이 내겠노라 큰소리를 땅땅 칩니다. 내 생에 첫 새 차와는 5개월 만에 이별했습니다. 남편의 도박빚이 또 터졌습니다.

700만 원이라는 돈을 갚을 길이 없는 나는 차를 팔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빚쟁이들이 남편의 회사까지 찾아가는 바람에 몇 개월 다니던 회사도 결국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나에게 저 차는 누릴 수 없는 혜택이 

되었습니다. 스포티지의 새 차는 연식이 오래된 모닝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앞으로 4년간 매달 할부금도 15만 원씩이나 내야 합니다. 나는 또 근검절약하는 생활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어느 날 주말. 점심상에 불만을 갖은 남편이 반찬투정을 합니다.

꾹꾹 눌러 담고 있던 화가 폭발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칼날선 말들을 쏟아붓습니다.


"지금 당신 입에 들어가는 그 쌀밥도 아까워. 그러니까 입 닫고 그냥 먹던지 먹기 싫으면 나가던지 해!!"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내가 내뱉어버린 저 말이 아직도 가장 후회스럽니다. 꾸역꾸역 잘 참고 견디며 살던 나의 사람다움이 저 말들로 인해 저 아래로 하락해 버린 듯합니다. 저렇게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만큼 나도 하락한 사람이라 느껴집니다. 본인도 잘못을 한 사람이지만 남편을 사람취급도 안 했던 나는 악처가 되어버렸을 겁니다. 그 사람을 이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나만큼이나 저 사람도 집이라는 공간이 숨 쉴 곳 없는 답답한 공간이었단 생각을 했을 테니.. 나도 그렇게 잘한 사람은 아니었구나란 생각이 들 때면 그날의 나의 말들이 후회가 됩니다. 목구멍까진 치민 나의 서슬 퍼런 말들도 때로는 입밖에 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타인을 위함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런 말들을 쏟아낸 나 자신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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