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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Mar 08. 2023

어디에나 행복은 있습니다.

지금의 삶에 지쳐 작은 행복을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두 번째 남편의 외도로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버렸습니다.

이젠 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냥 나둬버리기엔 너무도 화가 납니다.

시댁에 찾아가 울며불며 불쌍한 내 인생 한탄을 합니다. 이제 도저히 저는 못하겠다고요.


시부모님의 회유가 시작됩니다.

'자식을 잘못 키운 내 죄가 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신혼집을 며느리 명의로 바꿔주시겠다 하십니다.

혼자 애 키우며 사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라고 나를 겁주십니다.

27살의 난 혼자 세상에 나갈 자신이 없기도 없었습니다. 3개월의 시간을 주고 남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했습니다. 여자문제 정리하고 번듯한 직장을 잡을 때까지 난 친정으로 가겠다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 나에게 더 이상은 바라지 말라고 했습니다.


친정에서 지내던 시간은.. 절대 편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볼 낯이 없습니다.

이제 나의 집은 싫어도 우리가 살 던 집입니다. 출가를 하고 나면 친정집이란 이름이 붙은 것처럼 옛날 나의 내 집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옛날의 나의 집. 그것이 다입니다.


남편은 친구의 도움으로 직장을 잡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처음부터도 내 집 같지 않던 신혼집을 팔아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핑계일 수 있지만 괜한 집터를 트집 잡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집을 팔아 남은 돈은 2천만 원 남짓. 3년 이상 직장생활을 한 나의 대출을 받아 방 2개의 조금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합니다. 빛하나 들지 않던 신혼집이 왠지 더 우울한 마음을 만들게 해서 인지. 새로운 나의 집은 햇살이 따듯하게 비추는 남향의 집입니다.


나의 한 달 급여 180만 원. 대출이자 30만 원. 매달 30만 원씩은 적금. 관리비 18만 원. 아들 교육비 15만 원. 출퇴근 유류비 15만 원. 보험료 20만 원. TV/통신비 10만 원. 생활비 및 식비 50만 원.

여름엔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로만 살았고. 겨울엔 거실에만 보일러를 켜며 전기장판을 사용했습니다.

작은방들은 매일 냉골이었습니다. 아직 아이도 작은 터라 많은 식비가 들진 않아 다행입니다.

한 달에 한번. 내 월급날은 아들과 치킨을 시켜 먹습니다.

조금 아끼고 절약하면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남편의 급여는 있는 날 보다 없는 날이 더 많기에 내 계산에서 항상 제외입니다. 그냥 내가 모은 돈만 욕심안 부린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합니다.


난 나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삶을 살아야만 하나..

나도 사람이다 보니 아이를 보며 힘을 내다가도 갑자기 저 밑에서부터 욱 하고 올라옵니다.

퇴근 후 잠들기 전 맥주 한잔에 울어보기도 하고 나의 인생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란 암울함에 좌절도 했습니다. 


소낙비가 오던 저녁. 아이와의 퇴근길.  엘리베이터에 타는 엄마와 아들을 만났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아들은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장애정도가 많이 심해 보였습니다. 커다란 투명 우비로 휠체어를 덮긴했지만 아들의 발은 많이 젖어 있었고 엄마는 우산도 없이 계셨습니다.

대답 없는 아들에게 엄마는 자꾸 말을 겁니다. 다 젖은 발을 어루만지면서..


"00야~오늘 정말 다행이다~평소보다 운동을 못해서 엄마는 또 걱정했는데 이렇게 비가 올 줄 알고 

운동을 힘들어했나 봐~ 평소처럼 운동을 했으면 비를 더 많이 맞았을 거야~얼마나 다행이야~"

"....."

"비를 좀 맞아서 오늘은 배고파도 먼저 씻고 저녁 먹자~ 안 그러면 감기 걸려~ 00이 병원 입원하는 거 싫어하잖아~"

"....."

"오늘 깜빡하고 보일러를 켜두고 나왔었는데. 정말 잘됐네~ 집에 들어가면 춥지 않겠지~"

"....."

"오늘도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잘하고. 비는 좀 맞았어도 행복한 하루다~그렇지 00아~"


나는 집으로 와.. 많은 걸 후회합니다.. 나는 내 아들에게 저렇게 따듯하게 말을 해준 적이 있었나..

내 인생이 고단해서 아이에게 짜증을 부렸던 어제의 일이 기억이 납니다.

누가 봐도 불행해 보인다 느끼는 모습들임에도.. 대답 없는 아들의 발을 어루만지면서 본인은 흠뻑 젖어있었으면서도 행복하다 말합니다. 아픈 아들이 잘 견뎌준 하루를 칭찬하며 고마워합니다.


오늘은 나도 내 아들에게 내 옆에 와줘서 너무 고맙다 이야기합니다. 아들이 있어 엄마가 힘이 난다 말합니다.

엄마와 이야길 나눌 수 있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야기합니다.

내 인생에서도 작은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그분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내가 늙어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겨질 내 아이가 외롭진 않을까.. 엄마가 평생을 같이 있어줄 수 없을 텐데.. 평생 친구 같은 형제가 있으면 좀 안심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나에게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형아와 5살 차이가 납니다. 넉넉하진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생활에 나름 만족합니다. 아이가 둘인 남편도 이제는 정신을 차리겠지.. 희망도 품어봤습니다. 

이제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역시나 나의 착각들입니다. 사람이 절대 쉽게 바뀔 리가 없습니다.

양가 어른들을 모시고 둘째가 100일 잔치를 하고 온 날. 3번째 외도를 알게 됩니다. 


이젠 그냥 '이 인간 오래 참았었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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