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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희 책여울 Nov 10. 2023

마더와 고리오 영감

영화 마더를 보며 고리오 영감을 모셔왔다.

올해는 넷플릭스에서 시리즈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봤다. 책 읽기에 급급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틈 없이 살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웃겠지만 드라마는 대장금 정도 봤고 영화도 타짜를 올해 봤을 만큼 정말 무심한 관객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얼마 전에야 영접했다. 


원빈은 잘생겨서 인기 있나 했더니 바보 연기도 어쩜 그리 잘하는지 깜짝 놀랐다.(도준이 진짜 바보일까 의심스럽지만) 김혜자의 연기는 말해 뭐 하나!!! 처음엔 위대한 모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나는 허우적거렸다. 다행히 엄마로 살아봤기에 알 수 있었다. 엄마를 위대한 모성을 지닌 존재로 해석하는 게 늘 불편했다. 엄마도 이기적일 때 있고 내 경우 숭고한 적이 과연 한 번이라도 있었나 싶다. 왜냐면 인생은 엄마를 곱게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범인으로 잡혀온 종팔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오열하는 마더!! 종팔이를 위해 싸워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오열까지는 아니어도 맘이 아플 수밖에 없다. 엄마라는 이름 안에 갇혀 겪었을 마더들의 고통을 나는 충분히 알기에 엔딩 장면, 아줌마들의 막춤이 참 인상 깊고 짠했다. 엄마로 살아본 적 없는 봉준호 감독이 마더를 나보다 더 잘 안다는 게 놀라웠다.

<마더>

영화 속 마더는 오로지 도준을 위해 살았다. 마더를 보며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생각했다. 두 딸에게 배신당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전부를 딸들에게 주고 쓸쓸히 죽는 고리오영감. 아버지로서 고리오는 부성애라는 십자가를 진 예수로 보이지만 딸들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고리오 영감의 무분별한 사랑은 딸들에게 결국 독약이 되었다. 아버지는 딸들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딸들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과잉 사랑을 받기만 했던 두 딸은 결국 자신들의 삶을 온전하게 가꿔 나가지 못했다.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는 두 딸에겐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과연 내가 고리오 영감 입장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부족하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시공간이 정말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 결이 비슷한 느낌. 그리고 두 작품 모두 명불허전!! 아무튼 마더를 보며 뜬금없이 고리오 영감님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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