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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희 책여울 Dec 05. 2023

추억이 방울방울 맺히는

어른을 위한 동화, 영화 <호우시절>

며칠 전 본 <서울의 봄>때문인지 달달한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넷플릭스 검색하다 정우성 주연의 <호우시절>을 발견했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지만 사실은 제대로 본 영화는 아니었다. 지금처럼 OTT가 없을 때라 어둠의 경로로 본 건데 하필 번역이 안 돼 있었다. 영어랑 중국어가 대부분인 한국 감독이 만든 영화! 영어 자막으로 봐서 대충 이해하고 영상으로 어찌어찌 봤는데 오늘 넷플릭스에서 제대로 봤다. 사실 이 영화는 내용을 몰라도 괜찮다. 남녀 주인공만 보고 있어도 훈훈하다.


好雨時節

두보의 시(춘야희우: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에서 따온 말로 "때를 알고 내리는 비"를 뜻한다. 한자의 매력을 이럴 때 느낀다. 가슴이 무너진다! 군더더기 없이 사람의 마음에 내리 꽂힌다.


시골에 살게 되면서 호우시절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4,5월 내리는 비는 보나 마나 단비다. 농부들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고 마당의 꽃들은 물 먹을 기쁨에 호들갑스럽다. 하지만 9,10월에 내리는 비는 달갑지 않다. 단풍나무도 울상이다. 농사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거다. 살면서 호우시절을 언제 겪었던가 생각해 봤다. 왜 없었겠는가? 추억이 방울방울 맺힌다. 젊음이 이렇게 빨리 사라질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시간!




두보가 말년을 보낸 청두의 두보초당이 이 영화의 배경 공간이고 2008년 쓰촨 성 대지진도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다. 찾아보니 청두 근처에 진시황의 병마용도 비교적 가까이 있다. 청두 거리를 걷고 두보초당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당장 두보초당으로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 그나저나 정우성도 그렇지만 메이로 나오는 고원원은 진짜 너무 청순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영화, 호우시절!! 잔잔하지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솜사탕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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