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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영욱 Sep 20. 2023

뱀눈없는지옥나비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작품)


이브를 따라 갔다


입술들이 오물오물 매달린 사과나무 가지가지

바람이 나뭇잎을 나뭇잎이 바람을 서로 헐뜯기에 바빴다

 

우리는 혀를 길게 뽑아 두 갈래로 갈라지고  

썩은 나무의 뿌리를 따라 서쪽으로 미끄러졌다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석양은 혀를 날름거려

우리는 허물을 벗고 있어 맨몸이 부끄러워


고치가 쪼그라들었다

큰 독사를 삼킨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잔뜩 독이 오를까

한 입 더 베어 물면 약이 바짝 오를까

 

이브는 배가 부르고

배는 출렁이는 물살을 가르고


눈을 비비면 기억이 쏟아지는 거울 속의 겨울이 보였다   

축축한 골방에 고드름이 내려와

동면 속의 동사한 뿌리를 자르면,


발 없는 뱀이 알에서 걸어 나와

숲속 그늘에서 낙과의 젖을 짜 마실 거예요

 

목젖을 치는 빙산의 혓바닥이 얼얼하다

그림자를 찢는 햇빛의 송곳니가 홧홧하다    

낮과 밤이 뒤엉켜 꿈틀거려  

반쪽 난 사과

 

주름을 끌어당겨 흐느낌을 덮어 주면  

아담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씨앗들의 변명이 들릴까,

사과나무마다 뱀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낙원에서

 

 

이브를 따라 갔다

돌아보면 우리의 허물이 보일까 우리는 서로의 두 눈을 찔렀다

 

신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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