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눈없는지옥나비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작품)
이브를 따라 갔다
입술들이 오물오물 매달린 사과나무 가지가지
바람이 나뭇잎을 나뭇잎이 바람을 서로 헐뜯기에 바빴다
우리는 혀를 길게 뽑아 두 갈래로 갈라지고
썩은 나무의 뿌리를 따라 서쪽으로 미끄러졌다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석양은 혀를 날름거려
우리는 허물을 벗고 있어 맨몸이 부끄러워
고치가 쪼그라들었다
큰 독사를 삼킨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잔뜩 독이 오를까
한 입 더 베어 물면 약이 바짝 오를까
이브는 배가 부르고
배는 출렁이는 물살을 가르고
눈을 비비면 기억이 쏟아지는 거울 속의 겨울이 보였다
축축한 골방에 고드름이 내려와
동면 속의 동사한 뿌리를 자르면,
발 없는 뱀이 알에서 걸어 나와
숲속 그늘에서 낙과의 젖을 짜 마실 거예요
목젖을 치는 빙산의 혓바닥이 얼얼하다
그림자를 찢는 햇빛의 송곳니가 홧홧하다
낮과 밤이 뒤엉켜 꿈틀거려
반쪽 난 사과
주름을 끌어당겨 흐느낌을 덮어 주면
아담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씨앗들의 변명이 들릴까,
사과나무마다 뱀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낙원에서
이브를 따라 갔다
돌아보면 우리의 허물이 보일까 우리는 서로의 두 눈을 찔렀다
신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