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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Jan 17. 2022

양평에서 1박 2일

양평은 최근에 좀 친숙해진 곳이다.

2년 전 친척이 양평으로 이사한 후로 계절에 한두 번 정도는 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친척 집 방문이 아니다.

목적이 없다.     


에어비엔비로 검색을 해서 고른 숙소는 인적이 거의 없는 산속에 위치해 있다.

네비에도 안 찍히는 비포장도로를 굽이굽이 돌아 꽤 높은 데까지 올라왔다. 이런 곳에 타운하우스가 있다니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픈 날에는 훌륭한 은둔처가 될 거 같다. 그러나 눈이라도 좀 많이 온다면 식량 조달이 힘들어 난감할 수 있겠다. 1박에 20만 원이 넘는 비교적 높은 가격을 받는 이유는 새 집이라는 것,

그래도 주인장의 자신감이 조금 과한 것 같기는 하다.   


마을에 까마귀가 진짜 많다. 이렇게 큰 까마귀들은 처음 보았다. 조금 과장해서 독수리 만하다.

한 번 씩 내뱉는 중저음의 외침은 자기 영역을 침범한 이방인을 당장 쫓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단호하고 매정하다. 여러 마리가 현란한 곡선을 타고 비행하는 모습은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쏜살같이 날아와 날카로운

부리로 내 눈을 파먹을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감싼다. 날씨도 흐리고 까마귀 마을에 우리만 있는 것이 두려워지려는 즈음에 창밖을 내다보니 자동차 두 대가 올라온다. 아이들이 여럿인 거로 보아 두 가족이 함께 주말을 보내러 온 듯하다.      


인간의 고통은 장소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이란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려는 외적인 목적 이외에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알고 있는 물건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이라고도 한다. 집보다 불편한 곳, 집보다 안전하지 않은 곳, 낯섦에 두려워지기도 하는 곳, 그러나 뼈아픈 실수와 실패를 기억하는 어떤 물건도 없는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때문에 계속해서 여행 가방을 싸는 것 같다. 그러니 이번 여행에 목적이 없다는 것은 취소해야겠다. 가장 분명한 목적은 근본적으로 내재되어있음으로.    

 

결혼 후 지금까지 13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도 꾸준히 하니 스펙이 되어 2년 동안 3번의 이사했던 해엔 단골 이삿짐센터가 생겨서 대폭 할인을 받았었다. 작은애가 성인이 되어 취업을 준비를 할 때엔 '전학을 많이 다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빠르다'는 것을 자신의 장점으로 써먹었고, 큰 아이는 옛 동네를 순례하면서 시간여행을 하는 ‘동네 한 바퀴’ 취미를 갖게 되었다. 부모의 역마살 탓에 학창 시절 8개의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이

힘겹게 찾아낸 이사의 순기능 이리라.     


여행과 이사는 닮아 있다. 이사도 익숙함과 편안함보다는 낯설고 불편함을 택하는 것이다. 3개월 만에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청천벽력 같은 통보에 보따리를 싸야 했던 서러운 이사도 있었지만 이사의 절반 정도는

자발적이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 전에 서울을 떠나서 살아보자’는 식의 실험적인 이사도 있었고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외국에서 살아보자’는 식의 모험에 가까운 이사도 있었다. 지금은 8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낯설고 불편한 것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택하고 있다. 이사가 소강상태에 있으니 훨씬 적은 노동과 비용으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여행을 이사 대신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창밖을 내다보니 앞집에 불이 들어왔다. 그들은 인원이 많아서 복층 전체를 다 쓰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해방되어 위층에서 맘껏 뛰어놀고, 부모들은 아래층에서 역시 아이들로부터 풀려나 자유시간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위아래층 전체에 불이 환하게 들어오니 캄캄한 바다에서 등대를 발견한 듯 든든하다.

까마귀들도 조용해졌다.

이제 여행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질 시간이다.

맛집을 검색하며 내일의 동선을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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