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이상 1인 가구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내가 방문한 어르신 중에도 홀로 사시는 분이 계셨는데 가까이에 자식들이 살면서 음식, 청소, 집안일을 분담하고 있었다. 복지사와 작업치료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어르신 생활을 체크하고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와서 약 달력을 정리하고 운동을 시켜드렸다. 시니어 활동가가 때때로 말벗도 되어드리니 외형으로는 독거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동거인이 있어도 외로운 심리적인 독거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엄마도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시면서 홀로 지내신다.
6.25 전쟁 때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친척 몇 분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역시 실향민인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셨으니 그 삶이 참으로 고되고 힘드셨다. 그런 엄마의 고생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서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상처 받았던 내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고된 삶을 살다 보니 세세한 것 까지 살펴주지 못해 생긴 상처들이라 이해해 보지만 그때의 서운한 감정은 결혼을 해도 자식을 낳아도 없어지지 않았다.
결혼 후 10년쯤 지났을 때인가, 용기를 내서 묵은 감정을 엄마에게 내 비친 적이 있었다. 두 눈을 꾹 감고 들으려 하지 않던 엄마... 18살부터 부모 없이 살아야 했던 엄마에게는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딸이 고맙다고 큰 절을 올리지는 못 할망정 이게 무슨 배은망덕인가 싶으셨던 것 같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만 남았다. 심리학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 셀프 위로를 했다. 그렇게라도 위로받아야 했으니.
우리의 마음속엔 성장과정에서 받은 상처로 울고 있는 ‘내면 아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평생 잘 위로해 주고 안아주어야 한단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미숙한 엄마이긴 마찬가지다. 내 안에 숨어 지내던 성숙하지 못한 자아가 가끔씩 빗장을 풀고 나와서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곤 했다. 욕심과 감정을 이겨내지 못해 가했던 언행들을 모두 사랑 때문이었다고 미화할 순 없을 거 같다.
내 아이의 마음속에 ‘내면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성인이 된 아이와 사소한 논쟁을 하다가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충격과 괘씸함, 서운함에 한 이틀 동안은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의 어린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의 융단폭격 같은 잔소리와 다그침에 안절부절못하던 어린아이... 먹여주고 키워준다는 것으로 아이를 누르고 이기려 했던 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100점은 아니지만 내 엄마와 비교해서는 훨씬 좋은 엄마였으니 어지간한 잘못과 실수는 그냥 넘어갈 줄 알았던 거 같다. 우발적이긴 했지만 사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그날의 대화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심리학 책을 읽으며 이해를 해 보고 치유를 주는 강연으로 위로받는다고 해도 상처를 준 사람의 반성과 사과보다 나을 수는 없다.
자식에게 지나치게 몰입하는 부모들에게 자식을 분신으로 여기지 말고 여행길에서 우연히 함께 하게 된 동행자로 생각하라는 한 철학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는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나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할 때나 다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상처를 덜 주고 이미 난 상처는 덧나지 않아서 부모 자식의 긴 인연이 애틋하게 마무리될 거 같다. 내 부모는 노인 돌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차라리 나는 다른 어르신을 돌보는 것이 더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노인이 되면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어르신 교실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보겠다. 가능하다면 노인일자리도 찾아보겠다.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다면 스스로 대견할 것 같다. 더 안 좋아지면 요양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그것도 안 되면 시설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지 않을 생각이다. 자식한테 어려운 결정을 넘기지 말고 미리 내가 다 결정을 해 놓고 그대로 따르게 할 것이다.
앞날이 두려운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획을 세워 놓고 나니 내 마음이 편안하다. 그 안에는 예상치 못한 행복한 일도 있으리라.
독거는 하더라도 독고(獨孤) 하지 않는 독거노인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장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