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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다.

04.Friday3:13_수수

‘여름이었다’라는 문장을 어느 글이든 글의 마지막에 붙이면 그 글은 감성적인 글이 된다는 밈이 있을 정도로 여름은 매년 누구에게나 돌아오는데, 꼭 여름이 아닌 때(여름이 오기 전이든 후든) 여름을 떠올리면 괜히 조금 더 특별한 순간들이 떠오르고, 조금 더 낭만적인 기분이 들고,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 때가 조금 센티한 새벽이라 하면 괜히 여름에 얽힌 특별한 사연도 없었으면서 뭔가 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좋은 영화들이 많아 그런지, 여름휴가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가장 최근 본 드라마가 ‘그해 우리는’이고 여름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기쿠지로의 여름’이라 그런지 여름이라는 주제 앞에서 나는 내 그때 그 시절,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아쉽지만 특별히 낭만적인 과거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우스운 과거였던 것 같다.     


중학교 때 나는 앞머리가 없으면 절대로 안될 것 같았다. 죽어도 앞머리를 길어 넘길 생각을 못했다. 그땐 안경을 끼던 터라 앞머리가 길면 안경에 닿아 불편했다. 앞머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앞머리는 정말 순식간에 자란다. 매번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기도 귀찮고, 불편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둥글고 아주 짧게 자르는 방식이었다. 사이드로 갈수록 길고 센터로 올수록 짧아지는, 안경과 멀어지는 방식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나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긴 해야겠는데 귀찮은 건 싫고. 어찌 됐든 꼭 앞머리는 있어야 했고 편의를 위한 스타일이 꽤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이후 앞머리를 계속 길어 뒤로 넘긴 거로 미루어보아 난 앞머리가 안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땐 왜 그렇게 앞머리에 집착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뭐라고.     


그 시절엔 당연하게 긴 머리를 유지했다. 선도부 선생님이 긴 머리를 풀고 다니면 잡아서 몽둥이로 때렸다. 난 몇 번이나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다 걸려서 맞았다. 정말 아팠는데 죽어도 머리 묶는 게 싫었다. 머리를 푸른 게 더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무슨 청개구리 같은 마음인지 두발 자유가 생긴 고등학교 때 긴 머리를 그냥 싹둑 짧게 잘라버렸다. 그 이후로 몇 번을 길었다 잘랐다 반복했지만 특별히 긴 머리가 좋아 길었던 적은 없고 오히려 바빠서 못 잘라 길어지는 경우만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는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고 길어도 푸는 것보단 묶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 시절엔 참 어울리지도 않는데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거도 아닌 것인데 왜 맞고 다니면서까지 고집했을까.     


그 시절 여자 아이들이 긴 머리를 고수하는 것만큼이나 또 말 안 듣는 게 하나 있다. 교복 치마 길이다. 나는 또 참 애매하게 고집부렸다. 엄청 짧게 자른 것도 아닌데 꼭 검사에 아슬아슬하게 걸릴 만한 애매한 길이를 하고 다녀서 몇 번을 선도부 선생님께 혼이 나고 맞았다.(아이러니한 건 나도 한때 선도부원이었다..) 매번 걸리고 혼나는 게 귀찮아서 마지막엔 그냥 밑단을 푸르고 길게 입고 다녔다. 그때 잠깐 느꼈던 것 같다. 치마 길이 이것 참 별거 아니구나. 짧다고 딱히 더 예쁜것 아니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에 난 별거 아닌 거에 꽤나 목숨 걸면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저 나이땐 외모가 참 중요하다지만 지금 생각하면 죄다 나한테 어울리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막상 외모를 꾸미는 데에 그렇게 열성인 학생도 아니었는데 그냥 괜히 대세에 편승하려 했는지 뭔지 애매한 것에 고집을 부렸다. 그런 고집들을 떠올리면 조금 우습고 부끄럽다. 혹시 지금의 나도 별거 아닌 거에 목숨 걸고 있는 게 있을까. 별거 아닌 걸로 주변 사람들 마음 상하게 하는 게 있을까. 그러지 않고 있었으면 좋겠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그냥 내가 먼저 하고, 별거 아닌 건데 그냥 잊고, 별거 아닌데 고집부리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는 새에 지금도 그때처럼 그럴테지만.. 아무튼 그때는 부족했고 우습지만 진심이었던 그땐 참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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