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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

04. Friday3:13_채채



우리의 여름은 뜨거웠다.

 20대 초반에 나는 주로 연습실과 무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흘린 땀들로 금방 뿌옇게 변한 거울, 우리들의 들숨과 날숨으로 탁해진 공기 그리고 우리의 열정을 다 감싸지 못한 구석의 에어컨. 우리는 에어컨을 켜놓고도 업소용 대형 선풍기 앞에 모여 더위를 식히곤 했다. 어마 무시한 팬소리에 비해 참 둔탁했던 그 바람 앞에서 우리는 다음을 준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기공간에 있던 작은 에어컨으로 땀을 식히고 조명은 또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지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땀을 흘리고 또 흘리며 함께 울고 웃었다. 돈보다는 즐거움의 가치가 조금 더 컸던 그 시절에 우리는 뜨거웠고 함께라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더욱 집중했다.  


나의 여름은 안녕하다.

 20대 중반 넘어부터는 여름=냉방병이라 떠올릴 정도로 무더위와의 싸움은 뒤로한 채 오히려 여름을 더 여유롭게 보내고 있는 듯하다. 여름에도 뜨거운 온수 목욕을 즐기는 나는 샤워하고 나오자마자 거실로 달려가 에어컨을 켜서 집안의 습기를 날리고 (냉수 목욕과는 또 다른 시원함이 있다) 화장대 뒤편에 선풍기를 놓아 시원하게 머리칼을 말리며 외출 준비를 한다. 지하철을 타는 날엔 작은 핸디형 손풍기를 들고 나와 곧장 역으로 가서 바로 전철을 타고 (검색을 통해 철저하게 지하철 시간에 맞춰간다) 차를 타고 나가는 날에는 지하주차장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아파트 출입로를 넘어설 때면 이미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과는 먼 삶의 모습이 다소 민망하지만 나의 여름은 주로 이런 모습으로 시원하게 흘러간다. 일하는 내내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맞서 항상 얇은 셔츠를 걸쳐 체온 유지(?)를 하고 냉방병을 예방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무더운 여름밤엔 시원한 맥주로 더워진 속을 달래고 거실에 에어컨, 내 방엔 선풍기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아주 얇은 홑이불을 덮고 잠이 든다.


올해 여름은 걱정이다.

 부쩍 엄마의 한숨이 늘어났다. 함께 걷다 보면 어느새 엄마의 옷만 땀에 젖어있는 걸 자주 발견하고 별안간 붉어진 얼굴을 엄마가 창피해한다. 어느새 쉰을 넘긴 우리 엄마, 우리 안 여사에게도 갱년기가 찾아왔다.

“갱년기가 오면 몸이 아프고 마음도 힘드니 가족들이 잘 도와주어야 한다” 내가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엄마의 주입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있을 변화가 두려운지 틈만 나면 가족들에게 귀여운 반협박으로 협조 요청을 하고 친한 언니는 이제 시작이니 각오하라고 경고를 한다. “괜찮겠지~뭐~” 편안했던 나의 마음은 사뭇 진지해져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우리 엄마는 지금 한여름에서 늦여름으로.. 서서히 가을맞이를 하고 있는 중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엄마의 여름은 어땠을까? 사실 나에게만 열중하느라 한 번도 엄마의 계절은 신경 쓰지 못했고 그게 지금 보니 꽤 미안하다.

 엄마의 뜨거웠던 날들은 지켜보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선선한 가을날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올해 여름엔 꼭 옆에서 함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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